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특히, 수용자들 속에서 살아가는 교도관들은 이런 실망과 배신감을 일반인들보다 더욱 많이 느끼게 된다. 어쩌면 성직자들보다도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더 많은 관용과 사랑을 베풀다 지쳐가는지도 모른다.
교도관들이 가장 큰 실망과 배신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때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수용자가 출소 후 재범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 역시 그러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배신이 거듭될 때마다 새롭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정을 주지 않으려 한다.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교도관들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수용자들에 대한 교정교화 자체를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로는 수용자 교정교화를 수없이 외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손을 놓고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사회, 그런 사람들 속에서 묻혀 살고 있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개선을 포기한 채 무미건조하게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삶을 살던 나를 일깨워 준 “시” 한편이 있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어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줘라."
처음 이 시를 읽으면서 좋은 시라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살기가 쉬운가?”라는 반문을 저자에게 던지며 시의 저자를 본 순간, 마음속으로나마 그런 질문을 던진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반성하였다. 이 시의 저자는 바로 20세기가 나은 위대한 성녀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를 가슴속 깊이 새기며 읽다 보면 인도의 빈민가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꼈을,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국의 방송기자 멜컴 머거리지가 데레사 수녀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테레사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살아있는 몇 시간만이라도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입니다.”
엽기적인 범죄행각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살인범의 살기에 찬 눈빛이 교도소에 입소하여 순한 양의 눈빛으로 변모한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세상에 태어나서 교도관들에게 처음으로 인간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는 어느 교정사목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들으며, 데레사 수녀님의 “그래도 사랑하라!”라는 시는 우리 교도관들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을 하였다.
테레사 수녀님의 글을 읽으며 어떤 사람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끝에 결국에는 그 사람의 손을 놓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그때 그 사람의 손을 놓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는 반성의 마음을 가지며 “그래도 사랑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본다.
테레사 수녀님과 같은 성인이 아닌 나는 어떤 사람이 나를 크게 실망시키면 또다시 그 사람의 손을 놓게 될지 모른다. 아니 교정교화보다는 내가 편하고 싶어 그 사람은 내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데 내 스스로 손을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용자들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수없이 느끼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교도관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수용자들을 가장 가까운 데서 지켜보며 마음을 부딪치며 수없이 많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수용자들을 그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교도관의 길은 어쩌면 캘커타의 빈민촌과도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수용자들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만이라도 그들이 결코 버림받지 않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그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