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주의 교도관

by 지와 사랑

H는 초등학생 때 부모가 이혼을 하였고 15살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와는 연락이 끊어져 할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고등학교 중퇴 후 직장생활을 하다 26세 때 여자 문제로 알고 지내던 친구와 결투를 한다며 싸우다 살인죄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내가 근무하는 교도소로 오게 되었다.


내가 담당하던 집중근로 작업장은 일이 힘들긴 하지만 작업장려금이 월 30만 원 이상으로 다른 작업장에 비해 많았던 곳으로 장기수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담당인 내가 신입수용자들 중에서 직접 선발해 오기도 하였는데 초범이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 H가 눈에 띄었다. 어두운 구석이 있었지만 자존심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H는 힘든 일에 잘 적응하였고 작업장려금이 모아지면 할머니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내가 3년간 다른 교도소에 전출 갔다 온 후 보고 싶었던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H도 그중 하나였다. 작업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던 녀석이 나를 보자 반갑게 맞이 하였고 내가 담당하는 구역이 아니었기에 지나치다 어쩌다 한 번씩 만나곤 했는데 어느 순간 녀석의 얼굴에 그늘 진 모습이 보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집안 환경도 좋지 않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 동료 수용자가 지나가던 내게 H가 요즈음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는데 나와 상담을 원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나는 담당 직원한테 상담하지 굳이 왜 나를 만나려 하느냐? 고 하자 다른 사람들에겐 얘기하기 어려운 얘기라 하였다.


며칠 후 시간을 내어 H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근심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냐? 고 물어보자 어렸을 때 H와 동생을 버리고 갔던 어머니가 재혼한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는데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할 정도로 경제 사정이 안 좋은 데다 장애까지 있어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해야 하는데 친자인 H와 남동생이 있어 국가에서 민법상 부양 의무가 있는 H와 남동생에게 부양의무를 이행하라는 통지가 왔다는 것이다. H는 그로 인해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찾은 기쁨보다는 배신감과 애련한 마음이 교차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네 마음은 어떠냐?"라고 물어보자 "교도소에 있는데 어떻게 어머니를 부양해요? 저보다는 동생이 힘들어할 것 같아요" 동생은 직장에 취직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지만 어머니를 부양할 형편은 못되는데 걱정된다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너 자신을 추스르고 동생 걱정도 하지 마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법집행은 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징역 살기도 어려운데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부양한다는 중압감에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녀석이 안쓰러워 한숨이 나왔다.


며칠 뒤 눈에 띄게 체중이 늘어난 H에게 혹시 병이 생겼나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정신과 약을 복용한 후부터 식욕이 늘고 운동량이 부족해 살이 쪄서 고민이라고 하여 상투적인 말로 조절을 하라고 말을 했지만 이곳저곳 아픈 곳 투성이인 녀석이 삶의 무게를 잘 견디어내고 있지만 어깨가 쳐저보였다. 요즈음 들어 나만 보면 "언제까지 출근하세요?"라고 물어보는데 "연말까지 나올 거야!"라고 말했지만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내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후배들은 나를 온정주의 교도관이라 말한다. 단호하게 자를 때는 잘라주는 모습도 보이지만 가능하면 봐주려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 중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범죄자가 되어 수용생활을 한 사람들이 있었고 수용자 가족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후 사정 안 보고 단호하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한번 치기는 쉬우나 내가 쳐내서 나락에 떨어진 수용자들이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리했고 H와 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이 갔고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다. 후배 교도관중 누군가 내 역할을 해주며 H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리라 믿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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