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by 지와 사랑

아버지와 연락이 닿은 것은 24년만입니다.

24년 전 어머니와 이혼을 한 후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으며 어쩌다 아버지 소식을 들을 때가 있었는데 술을 드시고 실수를 하셔서 파출소에서 연락이 올 때였습니다.

말기암으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수용자의 형집행정지가 결정되면 가족에게 인계해야 하기 때문에 수소문 한끝에 30대의 딸과 연락이 닿았는데 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한 처지였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았으며 평일에는 경인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병든 어머니를 돌봐드리고 주말에는 남편과 시부모가 있는 남쪽지방으로 가 시부모를 돌보아 드리는 몹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인계받아서 요양병원에 모시고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낳아주신 아버지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고통스럽지 않게 살다 가실 수 있도록 기도드렸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상담하는 수용자는 딸이 13세 때 강간을 당하여 이런 저런 과정 끝에 강간범을 살해하여 15년여의 징역형을 받고 4년째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상담을 하러 갔더니 거실 화장실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동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친구에게 최근에 워낙 안 좋은 일들이 많이 벌어져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이름을 불러 상담실로 데려가서 얘기를 해보니 주변 상황이 최악이었다.

군 입대 예정인 아들은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상근예비역으로 갈 예정이며,

아내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허리 수술한 것이 잘못되어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

딸은 가끔 접견을 오긴 하는데 아빠 얼굴을 차마 볼 수 없다며 접견실에 들어오지 않고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여 마음이 너무도 아프며,

부모님 두 분 모두 병환중인데 최근에 부친이 건강이 좋지 않아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병세가 매우 안 좋아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며

어떻게 한집안에 이토록 철저하게 우환이 닥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사람이라도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족은 없냐? 고 물어보자 형이 한명 있으나 부모님 재산을 물려받아 유흥과 도박으로 다 날리고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연락도 안 되고 누나가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데 누나도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모친은 부친보다 건강이 더 좋지 않아 거동도 못하고 있어 주변에 왜 이렇게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지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작업하다가도 문득 문득 떠오르고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드려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것 같고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가까운 교도소로 이송을 갈수 없냐? 고 하여 이송문제는 쉬운 것이 아니나 한번 알아보겠으며 주변에 안 좋은 일들이 많이 벌어져 힘들겠지만 마음 굳게 먹고 잘 견디다 보면 좋은 시간도 올 거라는 말을 해주며 상담을 마쳤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섬마을 어촌에 정착해서 어촌계장을 꿈꾸며 평범하게 살아오던 아버지가 어린 딸이 동네오빠한테 강간당하여 강간범을 찾아갔다가 강간범이 아내와 몸싸움을 하며 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흥분하여 칼로 찔러 숨지게 하여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어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15년 가까운 생활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내가 만약 아버지였다면 어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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