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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Mar 18. 2024

잃어버린 아내 32

4년 만에 성당에서 미사 보다

  아내가 나를 남편이 아니라며 몇 달 동안 극도로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때가 작년 2월이었다. 5월 처녀귀신 소동을 겪은 후 여름 지나 가을되면서 아내의 망상과 이상행동은 현저히 줄었지만 인지능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아내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지만 아버지야 남편이야?라고 물어보면 남편이라고 하고 천변 드라이브와 걷기를 거의 매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몇 달째 하루에도 수십 번 수시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내가 곁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고1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교졸업 후 간호조무사가 되어 병원에 다니며 지병이 있는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언니가 놓고 간 조카까지 돌보며 견디기 힘들 때 아내는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갔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잘 알기에 나는 아내가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1, 2월을 잘 보내고 3월이 와서 드라이브 코스에 산수유, 매화가 피고 농부들이 밭을 갈고 배추 등 작물을 심고 있다. 좋은 계절을 아내와 함께 느낄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어제는 성당 자매님들이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왔다. 아내가 반갑게 맞아주며 웃고 있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인지능력이 떨어져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게 아내의 상태가 극도로 안 좋을 때는 제발 나를 남편으로 알아보게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지금은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아내에 얽매여 있는 내 생활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도 만나고 싶고 내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성당자매님들이 왔다 간 후 아내가 성당에  미사보 러 가자고 해서 신자들이 많이 오지 않는 미사시간에 조심스럽게 성당에 데리고 갔다. 4년 만에 미사에 참석하는 건데 그동안 코로나와 아내의 거동이 불편하여 이동이 불편하고 갑자기 이상행동을 할까 봐 가지 않았고 최근에는 아내가 성당에 가자고 몇 번 얘기했지만 성당에 가면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주저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사순시기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해야 할 일도 있고 해서 미사에 참석한 것이다.

  성당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아내가 몸으로 부축하지 않고 두 손만 잡아주었는데도 잘 따라왔다. 아내는 성호경도 제대로 못 긋고 동작에 따라 하지 못했지만 미사시간 내내 집중하였다.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나오는 것을 아내를 보며 억지로 참고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몇몇 신자들이 아는 체한다. 내가 아내를 부축해 나가는데 문만 잡아 줄 뿐 그 이상 액션이나 쳐다보지 않아서 좋았다.

  미사시간 내내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지만 부딪혀 보리라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아내를 위해 기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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