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철쭉, 복숭아꽃. 배꽃들이 순차적으로 피고 아내와의 산책길에 벚꽃이 눈처럼 날리며 떨어져 쌓이는 모습을 보며 아내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어 좋아지나 싶으면 어김없이 안 좋은 일들이 발생하곤 해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아내의 옷을 갈아입히는데 아내의 오른쪽 허벅지 안쪽 전체에 빨갛게 작은 물집들이 잡혀 있었다. 단순한 피부병이 아닌 것 같아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대상포진이라고 일주일간 신경 써서 지켜보라며 링거주사를 맞히고 약과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다행히 통증은 못 느끼는 것 같았는데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하루하루 주어진 날만 생각하며 잘 버텨왔는데 이런저런 불길한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어느 순간 아내가 지금 않는 병이 아닌 다른 병에 걸려 힘든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 내 건강이 나빠져 아내를 돌보지 못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들이 나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러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고 현재의 상황만 생각을 하며 아내를 차에 태우고 천변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시속 20km 미만의 속도로 천천히 달리며 배추, 오이, 고추, 감자, 가지, 고구마 등 아내의 시선을 끄는 작물들이 심어지고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이런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음을 감사드렸다. 고맙게도 아내는 대상포진을 잘 이겨냈다.
꽃이 다 졌더니 작약과 수국, 장미까지 피면서 아내의 시선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