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D교도소에서 야간 사동팀장을 할 때 외국인 수용사동 담당직원 K가 수용자 한 명을 조사수용해 달라며 팀사무실로 데려왔다.
수용자들이 외부에 발송하는 편지를 검토하던 중 받은 편지에 찍힌 소인을 지우고 떼어낸 우표를 붙인 것을 발견하고 해당 수용자 S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수용자 S는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사정하였고 K직원은 강경하게 시범케이스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K직원이 처벌의사를 강하게 표시하자 S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C소에서 이송온 후 3개월이 지나 공장에 출역할 때가 되었는데 이번에 징벌을 받으면 또다시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며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나는 사안이 크지 않고 수용자가 무릎까지 꿇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데 용서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K직원에게 내 의견을 말하였으나 K직원은 완강하게 조사수용 시켜 달라고 말하였다. 팀장 권한으로 조사수용 시키지 않을 수 있었으나 직원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고 해서 일단은 조사수용을 시키고 조사실에 말해서 훈계처분 해달라고 해야겠다 생각하고 K수용자를 조사수용 시킨 후 다음날 아침 조사실에 전화하였는데 조사실 직원이 단호하게 우표소인을 지운 행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 징벌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형법상 더 큰 죄에 해당하는 행위도 사안에 따라 용서해 주기도 하는데 몇백 원짜리 우표소인 하나 지운게 그렇게 중대한 범죄냐? 고 말하며 조사팀장에게 현장팀장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내 의견을 무시하고 수용자 S에게 징벌을 부과하였다.
나는 소년교도소에 근무하던 시절 수용질서를 잘 잡기로 유명했던 L소장이 부임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소년교도소 직원들과 소년수용자들의 관계는 간혹 수용자들에게 비인격적으로 함부로 대하는 직원도 있었고 막 나가는 수용자들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또는 삼촌과 조카, 선생님과 학생과 같이 끈끈한 정이 있었고 적대관계가 아닌 보살펴주고 상담해 주며 도와주는 그런 관계였다. 소년수용자들이 관규위반 행위를 했을 때 큰 건이 아니면 직원들이 조사수용 시키지 않고 품어주는 경우가 많았고 소년수용자들은 이런 직원들에게 감사해하며 따르고 있었다. 어떤 수용자들은 담당 직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출소 후에도 편지를 보내오곤 하였다.
그런데 L소장 부임 후 모든 것들이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용자들의 관규위반 행위를 잡아내어 처벌하는 적발제도라는 것이 시행되었고 수용자들은 사소한 잘못일지라도 적발 세 번을 당하면 징벌을 받았다. 적발을 많이 한 직원 세명에게 매달 적발왕이라는 명목으로 소장 표창을 주었고 사무직 지원 시 우선 선발, 인사 및 성과급에 반영 등 인센티브를 주었다.
적발 횟수가 적은 직원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기도 하였다. 그로 인하여 수용질서는 잡혔으나 적발왕들이 소년수용자들의 사소한 것들까지 지적하여 소년수용자들이 직원들을 불신하고 적대시하며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직원들은 L소장 치하에서는 C급 직원들이 S급이 된다는 말을 하며 빈정대기도 하였다. 매달 시상하는 적발왕 세명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L소장 부임 전에는 몇 년 동안 소장상 하나 받지 못하던 모직원은 L소장 부임 후 매달 적발왕 순위에 들어 소장표장을 계속 받기도 하였다.
내가 존경하던 조사실 선배는 L소장으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심하여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하였다.
적발왕들이 조사실로 넘긴 수용자들 중에는 직원들이 보기에도 징벌을 받을 사안이 아닌 억울한 일들이 많았고 직원들 중에는 수용자들을 지나치게 고압적으로 대하며 수용자들과 조그마한 마찰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조사실로 넘겼고 조사실에서는 직원이 잘못했더라도 무조건 직원 편에서 수용자들에게 징벌을 받게 하는 것이 L소장의 방침이었다. 조사실 직원이 훈계 처분을 하여 용서해 주자는 의견을 올리면 L소장은 노발대발하였고 이로 인하여 조사실 선배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 조사실 선배가 내게 소년수용자가 조사를 받다가 울면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데 선배가 봐도 별거 아닌 거로 억울하게 엮여 들어와 소장에게 훈계 의견을 올렸더니 소장이 격노하여 징벌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하며 너무 힘들다며 조사실을 나와야겠다는 얘기를 하였다.
L소장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은 호불호가 갈렸다. 이전에 근무하던 A교도소에서는 L소장이 조직폭력배들도 잘 잡고 수용질서를 확실히 잡아 주었다며 전설적인 소장이라며 칭송하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은데 소년교도소 직원들의 평가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나는 L소장 부임 몇 달 후 총무과 근무를 하며 L소장을 가까이에서 경험하였는데 전설적인 카리스마 뒤에 법과 규정을 무시하며 자기 미음대로 휘두르고 착복하며 원칙을 지키려는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편법과 비리덩어리였는데 보안과 강성파 직원들에겐 전설적인 영웅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