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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Sep 05. 2022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고

  보안과에 들어온 지 1년 여가 지났을 때 어쩐 일인지 정신 바짝 차리고 근무하고 있음에도 근무지에서 사고가 계속 터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근무 인수인계를 한 후 소년수형자들을 모두 의자에 앉게 한 후 교육을 실시한 후 10분 정도 지났을 때 소년수형자 O가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K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여 K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야간에 거실에서 다툼이 있었는데 앙금이 남아 취업장에 출역하여 순간적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청송교도소에서 전입 온 직원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성인교도소에서는 사고가 어느 정도 예상되어 예방할 수 있는데 소년교도소는 아무리 정신 바짝 차리고 근무해도 갑자기 사고가 발생해서 미치겠다고……. 분명히 조금 전까지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순식간에 싸움이 벌어지곤 하였다.

  며칠 후에도 한 번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고 자질구레한 싸움이 계속 이어져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가운데 2000년 12월 31일 야간 근무를 한 후 새해 아침을 맞이하였는데 아침 6시에 수용자들을 기상시킨 후 인원점검을 하며 이상 유무를 확인한 후 담당실이 있는 앞쪽으로 돌아오는데 앞 거실에서 갑자기 투다닥 소리가 나며 싸움이 벌어져 한 수용자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채 1분도 안되어 돌아오는 순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새해 1월 1일 새벽 6시부터 관구실에 연락하려니 도저히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일단 피가 나는 수용자를 담당실로 불러낸 후 피를 닦아낸 후 살펴보니 코피만 터졌지 별 이상은 없었지만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1월 4일 새해 두 번째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취업장에서 근무 교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행정주임이 공장으로 찾아와 행정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 고 제의하였다. 나는 총무과에서 5년 근무했지만 밖에 돌아다니며 하는 일만 해서 기안도 할 줄 모르고 컴퓨터도 할 줄 몰라 행정 일은 어렵다고 말하며 거절하였는데 행정주임이 배워가면서 같이 해보자는 얘기를 하여 보안과에서 사고 뒤치다꺼리하며 큰일 당하느니 힘들더라도 행정에 나가서 고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락하였다. 나는 행정주임이 특별히 나를 잘 봐줘서 나에게 직접 찾아와 함께 일해보자고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컴퓨터 잘하고 일 잘하는 직원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어보며 행정에 나오라고 했는데 아무도 나간다는 사람이 없어 나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이었다.  당시 소년교도소에는 큰 사고가 많이 발생하였고 사고처리를 도맡아 하는 보안행정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수시로 보안과장에게 불려 가서 혼나고 상급기관에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듣던 때였다. 보고문서 하나라도 잘못되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망신을 당하기 일쑤였다.

  나는 아내에게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말한 후 보안행정 업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집에 안 들어간 날은 하루도 없었다.


  행정에 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수형자가 아침 점검을 받은 후 같은 거실 수형자에게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소년수형자들은 자체내에서 엄격한 질서가 있었는데 담당교도관과 감독자가 거실마다 돌아다니면 거실별로 하나, 둘, 셋,......번호를 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들 속어로 "꽁" 잡은 것이다. 감독자와 담당교도관이 지나간 후 거실 선임자가 번호를 잘못한 수형자의 가슴을 발로 찼는데 잘못되어 사망한 것이다.

  가해자는 피해자 형과 동창으로 친한 친구였는데 1000명이 넘는 소년수형자가 수용되어있는데 하필이면 두 사람이 같은 공장에 있게 되었는데 형이 친구한테 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했음에도 그렇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 데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자꾸 실수를 하자 화가 나서 발로 찬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종합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는 시신을 지키기 위해 장례절차가 끝날 때까지 교도관 2명이 배치되었는데 고인의 형과 가족들이 배치된 직원들에게 몽둥이를 들고 와 휘두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해 교도관들이 멀리 도망가 있다가 유족들이 좀 진정되면 영안실로 갔다 다시 흥분하면 도망가곤하는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그 무렵 가족만남의 날 행사에 참석하여 어머니와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거실에 복귀한 소년수형자 한명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평소 지병이 있던 수용자로 직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수용자였고 낮에 어머니와 만나 식사까지 한 터라 병원의 사망진단서에 가족이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교도관의 애환중 하나가 자신의 담당근무지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관에서도 잘못이 있든 없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사고처리가 마무리 될때까지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공보다는 실을 따지며 문책하던 때라 담당교도관들이 며칠씩 조사를 받은 후 징계를 받곤 하던 때였다.

  지금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교정시설이 많이 개방되어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사라졌고  교도관들이 정상적으로 근무한 것이 증명되면 문책을 덜 당하게 되었다. 수용자들의 인권이 보장되면서 교도관들이 많이 힘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런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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