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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Dec 07. 2022

아기가 되어버린 춘국이

  내가 춘국이를 만난 것은 전일근로 작업장 담당을 할 때이다. 전일근로 작업장은 작업장은 위탁작업장보다 작업시간이 많으며 작업장려금(월급)도 훨씬 많은 곳이며 숙련된 작업을 위하여 5년 이상 형기를 받은 장기수들을 선발하였는데 무기수를 비롯하여 20년 이상의 징역을 받은 수용자 몇 명 등 살인죄를 저지른 수용자들이 많았다.   

  20대 초반으로 가장 나이 어린 한국인 수용자 중권이(가명)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를 다닐 나이에 직장을 구하러 다녔는데 방직공장에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가 몇 차례 거절당하자 불을 질렀는데 화재가 크게 번져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중형을 받았고, 

  조선족 수용자 남씨는 우리나라 시골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장이 1년 넘게 월급을 안주자 밀린 임금을 달라고 사장에게 독촉하였는데 사장이 밀린 월급은 안 주고 때리자 사장을 살해하여 중형을 받았고, 조선족 수용자 철수(가명)는 우리나라에 돈 벌러 들어왔다가 조선족 여성과 동거녀와 동거하던 중 동거녀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자 동거녀와 다투다 살해하여 징역 10년을 받았다. 다른 조선족 수용자 Y는 아내가 돈을 안 벌어오고 집에서 빈둥빈둥 논다고 구박하며 심한 말을 하자 아내를 살해하여 중형을 받았다. 아들과 딸이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할머니가 돌보고 있어  출소 후 중국으로 추방되면 5년간 입국할 수 없어 걱정이 많았다. 파키스탄 국적 수용자 A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파키스탄 국적의 동료가 모아 놓은 돈을 강취하려다 살인을 저질러 20년형을 받았고 대만 국적 J는 여러 건의 강도살인죄로 무기형을 받았다. 이렇듯 다양한 살인죄를 저지른 2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수용자들이 당시 월 30만 원이라는 획기적으로 많은 작업장려금을 주는 작업장에 모여 자신의 위치를 다지기 위하여 다툼이 많았고 고성을 지르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장기수들 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징벌 전력이 있는 수용자들도 많았고 싸움으로 3회 이상의 징벌을 받은 자도 2명이나 있었다.

  작업장 담당인 나는 이들을 잘 아울러 서로 화합하여 관규를 위반하지 않고 하자 없는 제품을 만들어 출고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서순화에 좋은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외국인들도 한국 노래를 무척 좋아해 다양한 곡을 준비해야 했다.

 빨래 건조장에 화분을 갖다 주어 고추, 토마토 등을 키우게 하기도 하고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수용자들의 얼굴 표정을 일일이 살피며 낌새가 이상하다 싶은 수용자가 있으면 담당실로 불러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며 사고 없는 작업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수용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가석방이었는데 20년 이상 남은 장기수들을 보면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가혹하게 고생해야 하지만 그들을 데리고 있는 나는 그들이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수용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쓸 것을 권유하였다.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한 미국인이 "나는 한국 교도소에서 인생을 배웠다."는 책을 썼다는 얘기를 하자 파키스탄 수용자와 조선족 수용자 춘국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춘국이는 자신이 쓴 글을 내게 보여줬는데 눈물겹도록 힘들게 살아온 삶이었다.  

  젊은 날 산골 화전민 마을에서 생활하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앞 도시로 나와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다가 아내와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기로 하고 자신은 남아서 식당을 정리한 후 가겠다며  아내 먼저 한국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 것이 불씨가 되어 한국교도소에서 나를 만난 춘국이......

  아내가 돈을 벌러 홀로 한국에 오는 바람에 40년 넘게 일궈온 소중한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며 자신이 먼저 한국에 나왔어야 하는데 아내를 먼저 보낸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던 아내가 돈 많은 한국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하려 하니 허락해 달라고 하자 춘국이가 한국인 남자를 보고 결정하겠다며 중국으로 데려오라고 하였는데 아내가 거부하자 춘국이가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 남자를 살해했으나 재판부에서는 아내와 혼인신고가 되어있던 한국인 남자의 사망보험금을 타내려 춘국이와 아내가 함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 아내는 무기징역, 춘국이는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춘국이는 자신이 혼자 저지른 일인데 아내가 공범으로 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며 중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내달라며 몇 달 주기로 작업장려금을 보내주었는데 아내는 춘국이에게 "내 인생에서 당신을 만난 것이 가장 후회된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능동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의 춘국이는 작업장에서 솔선수범하며 나이가 많은 편임에도 젊은 수용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다.

  그는 나를 형님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 내가 3년 동안 대전에 가 있을 때도 편지를 계속했고 자신의 자녀들이 중국에서 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전일근로 작업장에서 일해 작업장려금을 아이들에게 보내주고 그 후엔 직업훈련교도소에 가서 컴퓨터 등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얘기를 하였다.

  3년 만에 천안에 복귀하여 춘국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경북북부직훈교도소에 컴퓨터를 배우러 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듬해에도 춘국이는 천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기술을 더 배운 후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보내왔고 나는 그가 기술 배우는 것에 전념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잘하고 있다며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춘국이의 편지가 끊긴 지도 오래되었고 춘국이를 잠시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당직 현황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외부병원 진료 예정자 명단에 춘국이란 이름이 있었다. 나는 내가 아는 춘국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병명을 보니 뇌경색이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직업훈련을 받으러 간 수용자들이 관규를 위반해 징벌을 받거나 직업훈련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병에 걸리면 본소로 돌려보내는데 혹시 춘국이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돌아온 것이지 확인해 보니 경북북부직훈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져 며칠 전 천안으로 돌아왔고 뇌경색 수술 예정이었다.

  춘국이가 병사에 입병 되어 있는지 알면서도 코로나19 때문에 사사로운 출입이 금지되어 춘국이를 만나지 못하고 담당 근무자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수술은 잘됐는데 뇌손상이 와서 말이 어눌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라 했다.

   며칠 후 사동 복도에서 휠체어를 타고 가는 춘국이를 만났는데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나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동행 직원에게 "어디 갔다 오냐?"라고 물어보니 접견하고 온다고 해 춘국이한테 "아내하고 화상 접견했냐?"라고 물어보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교도소에 있는 춘국이와 아내는 가끔 화상접견을 하는데 아내가 춘국이가 아픈 후로 잘 대해주고 있는지 아내와 접견하고 오는 춘국이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생각하는 사람의 삶은 고달프다는 말과 같이 교도소 안에서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며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쳤던 춘국이는 생각이 많았던 만큼 고민도 많았고 머릿속이 복잡했었는데 그런 생각들이 다 없어졌는지 아기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춘국이를 만난 후 나는 수시로 춘국이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1년여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작업장에 출역할 만큼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고 머릿속이 깨끗하게 세척된 듯 내 모습이 보이면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보일뿐 긴 얘기를 하지 못했다.

  기나긴 방황과 고통 끝에 티 없이 깨끗한 어린아이의 미소를 짓고 있는 춘국이에게 다음 달부터 나를 못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마지막 근무를 마쳤다.

  교도관 생활을 마무리 지으면서 가슴에 남는 수용자들이 많은데 나는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그런 모습을 보여 아직 많은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별인사는 못 나누었지만 가슴속에 그들이 남아 글로 표현되고 있듯이 그들도 나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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