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진실을 과거로 만드는 법

골짜기를 지나 우리 식탁으로

by 거북이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지난번 편지에서 환자가 골짜기를 건너고 있을 때를

경계하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지.


웜우드,

이번에는 골짜기를 제대로 이용해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인간은 활력과 열정이 넘치는 꼭대기 시절에

우리의 유혹을 이겨 낼 힘도 동시에 갖고 있지.


그러니 인간이 골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인간들을 우리 식탁에 오르게 할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단다.


인간의 마음이 공허하고 삭막할 때를 공략해보자.

이때 감각적 유혹, 특히 성적 유혹이 잘 먹혀들지.

꼭대기에 있는 인간과

골짜기에 있는 인간에게 ‘성욕’은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꼭대기에 있는 인간은 ‘사랑에 빠졌다’라는 토 나오는 표현을 쓰며

상대방의 상황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관대해지지.


반대로 골짜기에 있는 인간은

우리가 유혹할 때

공허하고 삭막한 자기 마음을 채우는데 집중할 가능성이 높지.


이때, 진정한 사랑과 헌신은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여기고,

오직 순간적인 소유와 자극적인 환상에만 몰입하게 해라.

'성'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영혼을 갉아먹는 이기적인 중독과 성도착(性倒錯)으로

타락시키는 과정은 언제 봐도 즐겁지.


착실한 술주정뱅이를 만들려면

친구들과 즐겁고 기쁜 시간을 보낼 때 술을 마시도록 유혹하는 것보다,

침체되고 지쳐 있을 때 일종의 진통제로 마시도록 유혹해야 하는 법이다.


인간은 그 방법이 자신을 일으키고 위로하는 진정한 방법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지.


사실, 쾌락은 원수의 발명품이지 우리의 발명품은 아니지 않느냐?

나는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끔찍하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냐?

우리들은

원수가 금지한 때에, 금지한 방식으로

인간들을 쾌락에 빠지게 하면서 수많은 인간들을 지옥으로 이끌었지.

인간에게 쾌락은 감소시키고

그에 대한 갈망은 증대시키는 것!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이더냐?


이때 인간의 머릿속에서

지난번 너에게 가르쳐준 ‘기복의 법칙’ 따위는 싹 다 지워버리는 거다.


처음 경험했던 열정이 지속되어야 했었다고,

지금은 뭔가 잘못된 거라고 인간에게 속삭여.

지금 경험하고 있는 무미건조함과 무력감, 공허함도 영원히 지속될거라고 계속 부추겨.

‘네가 믿었던 그 모든 열정과 경험들은 사실 다 환상에 불과했어’ 라고

웜우드 너의 달콤한 목소리로 인간에게 계속 속삭여.

다음은 우리의 전술 방향 3가지이니 잘 배워 두거라


1. 비관형 인간 공략하기

만약, 인간 환자가 쉽게 절망하는 비관형이라면

자기 혼자만의 힘과 의지로

어떻게든 예전의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던 상태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계속 시도하게 해.

그렇게 계속 혼자만의 시도와 노력이 잘 되지 않을 땐

절망과 자포자기로 괴로워하며 쓰러져가는 인간의 모습을

곧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을 테다.

2. 낙관형 인간 공략하기

만약, 인간 환자가 낙관형일 경우라면,

특히 이미 기복의 법칙도 알고 있겠다

’이 정도 침체는 그리 심각한 게 아니야’ 라며

스스로 묵인하게 하고 현재 상태를 만족하게 하거라.


이 상태로 이주정도 지나면

예전에 신앙적으로 뜨거웠던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라고 믿겠지.

그러곤 ‘종교란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 이라며

뜨뜻미지근한 상태를 균형 잡힌 것이고 생각할 테지.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무교나 마찬가지란다.


3. 환자의 신앙을 정면 공격하기


이성적으로 ‘이것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가

곧 ‘이것은 거짓이다’가 될 수는 없지.

하지만 우리는 이성이 아니라

‘단계’나 ‘성장기’와 같은

‘전문용어’를 사용한다면

충분히 같은 말이 되게 할 수가 있지.

어느 날,

환자가 자신이 예전에 가졌던 열정을 보이는 초신자를 만났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게 하렴

"아, 나도 한때는 저렇게 순진하고 뜨거웠었지.

하지만 이제는 나도 세상을 알 만큼 알고 성숙해졌지"


그러면서 환자는 자기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한 때의 열정’에 대해 냉소하며 진실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버리겠지.

이렇게 하면 신앙을 단순히 '지나가는 단계'로서

단지 ‘과거의 것’으로만 인식하게 할 수 있단다.

웜우드야, 기대하거라.

이제 그의 영혼은 메말라가겠지만

우리 식탁 위는 풍성해질 것이다.


너의 사랑하는 삼촌, 스크루테이프로부터.


영혼의 소리를 못듣게.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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