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야,
엄마는 너를 지칭할 때 간혹 "애기야" 부르거든
"애기야 이리 와"
"애기야 일루 와"
"애기야 여기로 와.."
...
생각해 보니, 엄마가 널 “애기야”라고 부를 땐 항상 네가 엄마에게 오기를 바랄 때인 것 같아.
아무튼 너는 그 말이 좋은지 요즘은 엄마가
"애기야"하면
따라서 "애기야~" 한다.
그 말투마저도 귀여운 우리 애기야.
지금으로부터 딱 한 달 전 우리는 괌으로 해외여행에 다녀왔어. 정말 갑자기 계획된 여행이었지.
시작은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너의 할머니의 전화 한통이었어. 휴가가 생겼으니 놀자고 전화가 왔거든. 우린 원래 할머니랑, 엄마랑 너. 셋이 놀 계획이었던 거지. 그런데 우리의 계획을 질투한 너의 할아버지, 첫째 이모, 둘째 이모가 바쁜 일정을 조율해서 여행에 합류한 거야.
왜냐하면 너는 엄마의 사랑하는 첫 자식이기도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첫 손주이기도 하고, 이모들의 첫 조카이기도 하거든.
3박 4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엄마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어. 어른이 되면 여러 명이 각자의 시간을 한데 모으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서 엄청난 애정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거든.
여행의 가이드는 첫째 이모였어. 너의 첫째 이모는 말 그대로 대문자 J. 모든 계획이 첫째 이모의 주도 하에 착착 이루어졌지.
토 달 필요도 없어.
이모는 모든 선택지를 비교해서 최고를 찾아낸다.
(그런데 아마 이번 여행에서는 부모님의 취향도, 그리고 환이의 취향도 고려하느라 고생 꽤나 했을거야)
그리고 여행 당일,
이 비행기에 애기가 어디 타고 있냐는 듯이 너는 4시간 30분가량의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괌에 도착했어. 기내식으로 나온 계란샌드위치도 맛있게 먹었고, 잠도 푹 자고, 창 밖의 구름을 구경한 완벽한 비행. 예감이 좋았지.
이모가 너의 이른 잠 시간 때문에 우려했던 별빛 투어도, 배멀미 때문에 우려했던 돌핀 투어도 착착 일정에 맞게 진행됐어. 물론 해변에서 즐기는 모래놀이와 물놀이도 빠질 수 없었고.
기대하던 셋째 날 아침이 밝았어.
해외 운전에 로망이 있던 할아버지가 렌트카를 빌려 운전을 하기로 한 날이었고, 우리 가족이 투어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좀 더 편하게 놀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날이었지.
한 여름의 괌은 무척 뜨거웠지만, 차 안에서 시원하게 바라보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었어.우린 차 안에서 동요를 부르고 너는 그 동요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췄어.
해가 질 무렵, 할아버지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내서 노을을 선물하고 싶었어. 그래서 숙소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해변에 들르기로 했지. 거긴 스노클링 명소여서 즐거워하는 사람들 뒤로 해지는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어.
그때-
“아빠!!”
막내 이모의 외침.
고개를 돌리니 물가에 넘어져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어. 물이끼 때문에 미끄러운 곳이었어.
온 가족이 달려갔는데, 팔 하완 전체가 긁혀 있었고 피가 멈추지 않았어.
할아버지는 얼른 일어나 툭툭 털고
"아 괜찮아~ 여기가 이렇게 미끄러울 줄 몰랐네"
너스레를 떨었지만,엄마는 할아버지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았어.
하지만 “내가 아빠한테 여기 같이 발 담그자고 데려갔는데, 미안해" 하는 막내이모의 마음이 더 불편해질까 말을 아꼈어.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너는 이상하게도 내내 울었어. 좋아하던 동요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던 과자도 거절했어.
예감이 좋지 않았어.
그날 밤.
너는 비명을 지르며 깼고
머리와 얼굴, 배를 미친 듯이 긁기 시작했어.
너의 작은 손톱자국이 두피와 얼굴에 선명하게 남았고 얼굴과 배는 붉게 부어올랐지.
우린 결국 모두 함께 새벽 응급실로 향했어.
엄마가 어설픈 영어로 증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간호사인 첫째 이모가 의학용어를 사용하니 소통이 수월했고 안심이 됐어. 다행히 호흡에는 이상이 없었고, 먹는 스테로이드를 처방받고 증상이 가라앉았지.
다시 숙소에 도착한 건 아마 새벽 3시쯤.
나중에 막내 이모한테 들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릴 기다리는 차 안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셨대.
"남희가 저렇게 고생하는 걸 보니까, 둘째 낳으라는 말도 못 하겠다…"
그날 밤,
엄마는 응급실에서 환이 걱정에 눈물 흘릴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엄마 걱정에 차 안에서 잠 못 들고 있었던 거야. 아마 여행 내내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는 너를 돌보는 엄마가 눈에 걸렸던 거지.
엄마는 비행기 타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야.
장거리 노선일수록 좋아. 비행기에 기대앉아서 먹고 자고 영화 보고 아주 최고의 호사지.
그런데 괌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은 이제껏 비행 중 가장 힘든 비행이었어.
괌에서 처방해 준 약의 약효는 3시간이 고작이었어.
너는 한국 오는 내내 긁고, 울고, 깨고….
좁은 좌석에서 네가 울 때마다
엄마는 앞뒤 양옆, 모든 승객의 눈치를 봤어.
10분이 100분처럼 느껴졌지.
너를 안고 달래는 동안 다행히 다른 승객분들은 우리를 많이 배려해 주셨어. 승무원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가 진땀 빼는 동안 김아라 승무원님은 앞자리에 앉아있던 승객들의 양해를 구해 한 열 전체를 비워주셨어. 덕분에 세 좌석을 쓰게 된 너는 넓은 공간이 맘에 들었는지 차츰 진정 되더라.
옆자리에 온기가 사라진 순간, 너의 눈물이 잦아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어.
고생하는 네가 안쓰러워서였는지,
고생하는 내가 안쓰러워서였는지.
힘들어서였는지, 아니면 감사해서였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진에어 홈페이지에
승무원분들과 승객분들에 대한 감사의 글을 적었어.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애기야,
너와 함께하는 매일은 감사할 일로 가득해.
너를 만나기 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지만, 그만큼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더라.
비행기 안에서 너를 달래려 애쓰던 순간에도, 결국 가장 큰 힘이 된 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였어.
가족과 친구, 직장, 이웃, 심지어 길을 걷는 순간조차도 그래.
유아차를 끌고 있을 때 문을 열어주는 손길,
길에 떨어진 너의 손수건이나 신발을 건네주는 다정한 마음들.
나의 최선으로 완성되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으로 풍성해지는 요즘 삶 속에서 겸손과 감사를 배워.
그리고 할아버지는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 ~ 이제 팔 좀 괜찮아졌네.
팔 아파서 일할 때 힘들어 죽겠더라고"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