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친구, 펜을 든 형제
“네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잊을 수 없었다.
광주 미군정 청사 지하 취조실.
피투성이가 된 청년이 끌려 들어왔다.
“이놈도 "민의의 소리"를 뿌렸다 합니다.”
순형은 고개를 돌렸다.
그런 유인물만 수십 통.
그 중 두어 장은 아직도 그 손글씨가 생생했다.
‘두석이다.’
심장이 알았다.
그때, 보고서가 하나 더 올라왔다.
<민의의 소리 관련 제보 접수. 소재 추적 중.>
순형의 손이 떨렸다.
순형과 두석은 동경 유학 시절,
함께 일본 경찰을 피해 뛰던 동지였다.
함께 감옥에 갔고, 함께 굶고 웃었다.
“언젠간 돌아가야지,
우리가 만든 학교에서, 아이들 앞에 서야지.”
그 시절 두석의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그러나 지금의 순형은
그 아이들을 의심하고, 쫓고, 때려야 하는 경찰 간부였다.
밤례는 밤마다 빈 방 한구석에서 초를 켰다.
“두석선생님이 글을 쓴다구요?”
격섭이 속삭이듯 말했다.
“예. 숨어서, 밤마다.
그 글들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경찰이 알면...”
밤례는 그날로 옷을 꾸렸다.
“내가 나서야 해. 이대로 가면...
두석씨는, 다시...”
비 내리는 저녁, 강두석은 외부에서 은밀히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붕 아래 피신하던 순간, 발걸음 하나가 멈췄다.
“두석.”
뒤돌아본 그 앞엔, 총을 든 순형이 서 있었다.
비에 젖은 군복, 흔들리는 눈.
“너였지. "민의의 소리"
두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야.”
“너… 왜 그렇게 살아.”
“네가 그렇게 살아버렸으니까.”
잠시 침묵.
총구가 떨렸다.
“순형아…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 그게 다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아니… 틀린 건 나야.”
순형은 총을 내렸다.
“도망쳐. 다시 만나면… 정말 잡아야 해.
이번 한 번뿐이다.”
두석은 숨을 죽이고 산을 넘었다.
밤례는 멀리서 그 등을 바라보다, 주저앉았다.
“다시는, 다시는…”
순형은 그날 밤 혼자 앉아 술을 마셨다.
총은 멀찍이 놓여 있었다.
“네가 옳다, 두석아… 그런데 난… 살아야 했어.”
#작가의 말
형제 같았던 두 사람이 갈라지는 순간은,
역사가 두 마음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찢는지를 보여줍니다.
총을 든 순형, 펜을 든 두석.
그들은 대립한 적이 아닙니다.
다만, 살아남는 길이 달랐을 뿐입니다.
‘적’이란 말보다
‘놓쳐버린 친구’란 말이,
더 깊은 비극으로 느껴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