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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의 보호자로 살며_흔들림 속에서 마주하는 나

강요가 아닌 이해하는 사랑의 방식

by 하서연

아이들이 태어난 후 오랜 시간 동안 남편은 거실에서, 나는 아이들과 안방에서 잠을 잤다. 남편은 아침 햇살이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간에 일찍 일어났지만, 나는 주말 아침이라 암막 커튼을 치고, 알람을 꺼 놓은 채로 늘어지게 잤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거실로 나왔을 때 남편은 어딘가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잘 잤어?" 아침 인사를 건넸지만, 남편은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가까이 다가가 왜 대답하지 않느냐며 끌어안았더니, 그는 "잘 잤어"라며 대답하면서도 나를 밀어냈다. 주말에도 같은 시간에 밥을 먹기 원했지만 늦게 일어난 나에게 불만인듯했다.

남편은 아침에 챙겨주는 레몬수도, 녹즙도 손대지 않은 채 연신 투덜거렸다. 나도 주말에는 좀 천천히 먹자며 한마디 보탰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 한 끼 먹었을 뿐인데 가득 쌓인 설거지를 하고, 미리 돌려놓은 빨래를 널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욕실 청소까지 마쳤다. 그 사이 남편은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우리 남편, 어제도 늦게 주무셨나 보다. 낮잠을 자는 거 보니."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조용히 말했다.

남편이 병원에서 집으로 온 지 2주가 지났다. 나는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길 바랬는데 퇴근하고 와도 그대로인 설거지, 빨래, 어질러진 집안과 늘 그 자리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에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픈 몸으로 가족과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다짐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올라오는 화를 가라앉혔다.

점심을 뭘 먹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남편이 먹고 싶다고 했던 칼국수가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밀가루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나올 때 그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줄줄이 나열하며 장난스럽게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병원의 루틴에서 벗어나 쉬고, 웃고,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을 텐데, 나는 그에게 건강을 생각하라며 잔소리로 답했었다.

"칼국수 먹으러 가자."

남편에게 말하니, 그는 시장에 있는 칼국숫집을 가자고 했다. 시장에 가서 칼국수도 먹고, 호떡도 두 집에서 사서 맛을 비교하며 나누어 먹었다. 오늘은 그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점심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나는 남편에게 내 생각대로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남편을 위해 한다고 했던 행동들은 사실 남편의 건강이 나빠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커져 나의 기준에 맞게 강요한 것이었다. 남편도 나도 서로가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말하지 않은 마음은 결국 쌓이고 터질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의 냉랭했던 공기는 저녁이 되어 원래의 따뜻함을 되찾았다.

어떻게 살든, 그것은 각자의 삶이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방식’을 강요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상대방의 삶을 침해하는 일이다. 그렇게 사는 하루하루는 행복하기보다 서로를 지치고 힘들게 할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부터 지켜가야 할 사랑의 방식임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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