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2주간 남편과 집에서 함께 지낸 시간이 어느덧 지나갔고, 다시 남편이 요양병원으로 가는 날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시설을 알아보고, 전에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두 달여간 남편이 병원에 있었던 시간에는 아이들과 간단한 식사를 하고, 개인 시간도 많아졌었다. 그런데 이번 2주는 아침마다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고, 퇴근 후 점심을 챙기며 때때로 먹는 약과 집안일, 그리고 세명이 돌아가면서 열이나서 더 정신없이 흘러갔다. 어제 저녁에 아이들과 다같이 누워서 2주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조용히 있다가 시끄러우니까 2주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싸우고, 나는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다며 틱틱거리고, 남편은 먹고 싶은 음식을 못먹게 한다고 툴툴 땠지만 다시 함께 모여 웃는시간이 반복되는 것. 그게 바로 삶이고 행복이 아닐까. 행복은 매일 웃고 좋아야 행복이 아니다. 그냥 하루 사는 과정이 모두 행복이 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우리는 2주간 행복했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없는 시간과 함께 있던 날들을 비교해보니 남편은 내 방식과는 다르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데리고 다니며 '무엇'을 해야만 아이들과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장난을 치며 자연스럽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도 나는 잘잘못을 따졌지만, 남편은 아이들의 말투를 따라하면서 웃음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 집안 공기는 무거웠지만, 그가 다시 돌아오니 집이 따뜻한 웃음으로 채워졌다.
남편이 요양병원에 간다고 하니 벌써부터 그 빈자리가 걱정된다. 아빠의 역할까지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의 따뜻한 분위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우울한 감정에 잠식되어 집안 공기까지 얼어붙게 하고 싶지 않다. 요양병원에 있다가 돌아와서 남편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없는 동안 어땠어? 엄마가 잘 해줬어?"라고 물었더니 둘째가 답했다.
"몰라, 우리가 잘못하면 엄마는 자기가 화내고 자기가 혼자 울어."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며 화를 내다 보면, 그 화는 점점 커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혼자 밀려드는 죄책감에 책상 앞에 앉아 울기를 반복 했다. 그런데 남편이 있는 2주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함께한 시간을 통해 유연함의 중요성을 느꼈다.
1시쯤 남편이 출발한다고 해서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배웅하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시간이 부족해 김밥을 포장해 급히 집으로 갔다. 남편은 이미 캐리어에 필요한 짐을 가득 채워놓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영양제와 약을 챙기고, 마주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온 픽업 차량이 도착하자 남편은 남은 커피를 급히 들이켜고 옷을 챙겨 입었다. 아이들과는 현관에서 인사를 하게 했다. 아이들은 아빠를 안고, 뽀뽀하고, 또다시 안고를 반복하며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결국 남편이 아이들을 살짝 밀어내고 현관문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아이들처럼 남편을 안고 뽀뽀하고, 다시 안고 반복 했지만,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가 병원차량이 트렁크를 열고 기다리는게 보였다. 짐을 먼저 싣고 차에 올라탄 남편의 얼굴이 썬팅된 창문 너머로 보이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길이 없었다. 창문이 내려가고 남편이 내게 말했다.
"왜 또 시작이야. 얼른 들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더욱 아프다.
남편이 떠난 후 집에 돌아와 찻잔을 정리하고, 벗어둔 옷을 세탁기에 넣으고 옷을 들었는데 그의 체취가 코로 훅하고 들어왔다. 그 순간, 생각 할 시간도 없이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첫째가 "엄마 어디 있어?"라며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 세탁실 문을 닫고 울음을 멈추려 애썼다.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남편이 떠난 빈자리는 크지만,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시간을 채워갔다. 그리고 연말에 신청했던 줌바댄스를 떠올렸다. 그동안 가지 못했던 줌바댄스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밖에 나왔더니 하얀 눈이 펑펑 내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었지만, 왠지 마음은 상쾌했다. 몸을 움직이니 마음속 깊이 쌓여 있던 감정들도 조금씩 흩어지는 듯했다. "마음은 생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으로 움직이는 게 맞구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한 걸음씩 걸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도 집안을 따뜻한 공기로 채우기 위해, 그리고 내 마음의 유연함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 느꼈던 이 감정을 기억하며 내일을 준비해가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