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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의 보호자로 살며_흔들림 속에서 마주하는 나

길 끝에서 본 희망

by 하서연

생각보다 입원 생활이 길어졌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쌓인 세탁물을 들고 세탁실로 향했다. 세탁과 건조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잠깐 운동할 겸 복도를 걸었다. 십분쯤 지났을까. 나는 남편에게 병실로 올라가라고 했다.

“왜 자꾸 나 먼저 올라가라고 해? 내가 이것저것 간식 사 먹자고 할까봐?”

“응! 눈 돌아가는 소리 들리는거 같아. 얼른 올라가~”

“고년 눈치 엄청 빠르네.”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남편을 올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병원 옆 산책길로 향했다. 조끼 하나만 걸치고 나왔는데, 바람은 머리카락이 흩날릴 정도로 세차게 불었고, 공기는 차가웠다. 다시 돌아갈까? 괜히 나왔나? 망설이면서도 계단을 올라섰다. 그런데 계단 위를 오를 때와 달리 산책길은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은 조용했다.


길게 뻗은 산책로를 보니 달리고 싶어졌다.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끝을 목표로 달렸지만, 점점 ‘여기까지만 할까? 이제 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 같아 고개를 떨구고 발끝만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다 보니 어느새 길 끝을 돌아서고 있었다.


계속 달렸다. 그러다 도착할 즈음이 되자 귓가에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도 들렸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발끝만 바라보며 달렸더니 복잡했던 마음이 비워지고, 남은 건 숨소리와 자연의 소리뿐이었다.


싸늘한 바람과 공기에 돌아서고 싶었지만 올라서니 따뜻한 햇볕이 기다리고 있었고, 달리다가 멈추고 싶었을 때 발끝만 보고 한 걸음씩 걸어가니 아름다운 새소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삶도 그렇겠지. 힘들다고 멈추지만 않으면 어느새 길을 돌아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고, 멈추고 싶을 때 한걸음 더 내디디면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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