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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주부로부터 가족을 독립시키기

by 고갱이

토요일 밤 잠들기 전, 셋이 약속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절대 서로 깨우지 말고, 배고프면 각자 밥 챙겨 먹고, 심심하면 알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자."


한 끼라도, 간단하게나마,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밥을 직접 차리고 먹고 치우는 것은 사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밥을 차리기 귀찮다는 것은 그만큼 배가 고프지 않다는 뜻이니 차리기 싫으면 굶어도 된다. 굶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배가 고프면 한 끼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다음 끼니에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또 그 시간만큼 위를 쉬게 하는 거니까, 나는 건강한 사람이 한 끼쯤 굶는 행위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요즘 한참 요리에 재미 들린 복숭아는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파니니 기계 사용법을 배웠다.


일요일 아침,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고, 남편이 2등, 아이가 3등으로 방에서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엄마가 일어나 있다한들, 약속은 약속. 오늘은 목마른 자가 직접 우물을 파기로 한 날이다. 세수를 마친 복숭아는 무사히 햄과 치즈를 넣은 파니니 샌드위치를 만들어 우유와 함께 먹었다. 남편은 누룽지를 끓여 김과 함께 먹었고, 나는 밀크티를 만들어 바나나와 먹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은 오빠에게 밥을 차려 주란 말이었다. 어머니는 외출할 때마다 나에게 말했다.

"네가 오빠 밥 좀 차려주고 있어."

배고프면 밥 챙겨 먹어라가 아니라 오빠 밥을 차리라는 것이다. 나는 울고불고 화를 냈다. 오빠한테는 왜 밥 차려 먹으라는 말을 안 하냐고, 왜 내가 오빠 밥을 차려줘야 하냐고, 배고픈 사람이 알아서 챙겨 먹으라 하라고, 왜 오빠한테는 동생 밥을 차려주라고 안 하냐고.


가부장제에 익숙한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이처럼 여자가 남자에게 밥 차려주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 내 손위 형제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면, 과연 어머니가 나에게 ‘언니 밥 차려주라’고 하셨을까. 부부싸움을 한 다음 날 아침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아버지의 아침 상을 차렸던 어머니였다.


밥은,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내 딸이 여자여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밥을 스스로 차려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면, 그 누군가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다. 사는 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스스로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입맛에 맞게 요리하고 그 음식으로 배를 불리는 행위만큼 중요한 일은 또 없다. 나는 이 집의 주부인 내가 없을 때, 우리 가족은 굶지 않길 바란다. 편의점 한 귀퉁이나 햄버거 가게에 서서 대충 끼니를 때워서도 안 된다. 배달음식도 안된다. 라면 하나를 끓여먹더라도, 토스트 한 장을 구워 먹더라도, 집 안에서 따뜻한 온기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편안하고 느긋한 상태로 밥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가 충전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법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도 가끔씩, 스스로의 밥은 스스로 해결하는 날을 가질 것이다.


... 절대 내가 밥 차리기 싫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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