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중 어느 날이었다. '이것'은 엄연히 재스민이라는 공식 학명으로 불리지만, 재스민이란 어디까지나 식물계에 속하는 생물에게 해당하는 말이기에 나는 '이것'을 '이것' 외의 다른 이름으로 칭하기가 영 내키지 않는다.
사전에서 식물의 단어 뜻을 찾아보자. '세포벽이 있고 엽록소가 있어 독립영양으로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라 정의돼있다. 식물의 특징이나 구성요소, 활동 방법으로 소리는 없다. 음성이나 언어, 하다못해 몸짓으로 다른 존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물계에 해당하는 특징이다. 식물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식물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당연하다. 나는 반대로 식물이 말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이 경우, 질문의 주어로 쓰인 저 식물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식물이라면 문장 자체가 성립되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은 세포벽이 있고 엽록소가 있어.... 아무튼, 저 식물은 이 식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말하는 나도 속 터지니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달라) 분명 '이것'은 재스민이라는 나무인데 식물이 아니라는... 아니, 나무는 분명 나무다. 창가에 두고 물만 주면 새잎을 내며 쑥쑥 자란다. 꽃도 피운다. 흙 속에 뿌리가 있고 가지마다 초록의 이파리가 난다면 나무 아니던가. 그런데 얘는 말을 한다. 내 말은 '이것'이 말을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매일, 잔소리를, 시끄럽게.
학교에 안 가도 되는 것은 좋았지만 더위에 짜증이 한껏 났던 오후였다. 아침부터 방 안에서 선풍기를 끌어안고 뒹굴었다. 만화책을 반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현관을 나설 때였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열었다. 아빠였다. 꽃시장에 다녀온다던 아빠는 손에 50cm 정도 되는 작은 묘목을 들고 있었다.
"그게 뭐야?" 내가 물었다.
"자스민. 오렌지 자스민." 아빠는 베란다에 화분을 내려놓으며 각도를 맞췄다. 가느다란 가지에 원형의 진한 초록 잎이 포도송이처럼 달린 어린나무였다.
"그걸 왜 사?" 내가 또 물었다.
"이게 꽃이 피면 향이 여간 좋다." 아빠는 바가지에 물을 퍼와 나무에 조심조심 부었다.
"그럼 좀 큰 걸 사지. 이렇게 쪼그만 게 언제 꽃이 펴?"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키우는 재미가 있잖냐." 뒤에서 혼잣말 같은 답이 들렸다. 그리고 아빠는 재스민 나무를 20년 동안 키웠다.
한 생명을 이십 년 동안 돌본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갓난아기가 성인이 되는 데 충분한 시간인 20년은 개나 고양이로 치면 한평생이 넘는 시간이고, 지구의 연평균 온도가 0.5도 오른 시간이다. 최신형 goldstar 벽걸이 에어컨이 누렇게 변해 덜덜거리게 되는 시간이고, 살균세탁 하셨냐고 집요하게 묻던 하우젠 세탁기가 표준세탁 시간만 3시간에 육박하게 되어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자취를 감추게 된 시간이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는 중간관리자였던 아빠가 한 번 더 승진하여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다 은퇴한 시간이기도 했다. 퇴직 후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진 아빠는 종종 나의 외출 길에 동행했는데, 학교나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준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아빠가 운전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듬성듬성 빠진 머리, 구겨진 목주름, 굽은 어깨, 그리고 마른 손. 핸들을 감싼 손가락은 어찌나 앙상한지, 한겨울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뭇가지 같았다. 피부 위로 드러난 파란 핏줄은 바싹 마른 땅 위의 강줄기여서 나는 종종 그 강둑이 터져 저 땅을 다시 촉촉하게 적시는 상상을 했다. 아빠의 손가락 사이로 다시 푸른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20년은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상을 한없이 낡고 약하게 만들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無)의 상태로 보낼 만큼 무차별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아빠와 함께 '이것'이 살았다.
작년 여름, 아빠는 '이것'을 차에 싣고 내 집에 왔다. 야근 후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주, 아이스크림을 사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나는 빨리 집에 들어가 눕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헉!"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내지른 나의 숨이 혹시 '이것'에게 말의 호흡을 불어넣어 준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만큼 큰, 육성이 터져 나왔다. 캄캄한 밤, 제집 현관문 앞에 사람 키만 한 나무가 놓여있는데 안 놀라는 사람이 있을까.
"이게 뭐야?" 자세히 보니 아빠 집에 있던 재스민 나무였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시 물었다.
"이게 뭐야?" 내 짜증에 익숙한 아빠는 그것도 모르냐는 말투다.
"자스민, 오렌지 자스민."
"아니, 이걸 왜 여기 갖다 놨냐고?" 현관문의 키패드를 쿡쿡 눌렀다.
"그게 꽃이 피면 향이 여간 좋다." 아빠는 물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바가지 듬뿍 부어주기만 하면 되니 앞으로 네가 키우라 한다. "내가 양띠잖냐. 양은 풀을 뜯어 먹고 산다. 그래서 나랑 사는 화분이 자꾸 죽어난다."
"나도 양띠인데!" 아빠는 시큰둥하게 그러냐며 전화를 끊었다.
화분은 무거웠다. 뼈만 남은 그 얇은 허리로 어떻게 이걸 싣고 왔는지 모르겠다. 낑낑거리며 겨우 집 안으로 들여놨다. 18평짜리 집의 거실에 놓으니 나무는 어지간한 옷장만 해 보였다. 컵라면에 소주를 마시면서 나무를 노려봤다. 적당히 굴곡을 이룬 가지마다 초록 이파리가 빼곡히 달려있고 쌀 튀밥처럼 하얗고 길쭉한 꽃봉오리는 군데군데 무리 지어 매달려있다. "아니 대체 왜 이걸..." 더는 말해봤자 소용없기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물을 줄 생각하니 너무 귀찮다. 애초에 화분 따위는 키워 본 적도 키울 생각도 없는 나였다. 아빠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짐을 떠안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다음 주말에 돌려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살다 보면 당초 계획이 어긋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 대체로 이런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따로 노는 몸과 마음이다. 머리는 주말에 해야 할 일을 시간 단위로 짜놓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사지가 바닥에 들러붙어 꿈쩍하지 않는다던가, 뭐 그런 이유로 사고는 발생한다. 게다가 주말 아침에 계획대로 차를 빌려 재스민을 싣고 아빠 집으로 가는 행위보다 바가지에 물을 퍼와 붓는 행위가 시간적 육체적 심지어 객관적으로 훨씬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정확히 1주일 후 재스민은 고목(古木)다운 노련함으로 꽃망울을 터트렸다. 꽃을 피우는 솜씨가 20년간 개화 실력을 갈고닦은 장신의 기술이 떠오를 정도였다. 재스민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터질 정도로 봉오리를 통통하게 살찌운 다음 눈치를 살폈다. 타이밍을 찾는 중이다. 어느 순간을 찾는 건지 나는 잘 모른다. 기온 25도 습도 60% 풍속 3.7m/s인 순간인지 아니면 온 우주가 잠든 캄캄한 밤 첫발을 내디디고 날아오르는 부엉이의 날갯짓에 떨어진 깃털이 땅에 닿는 순간인지. 바로 그 어떤 순간이 20년 장인의 극비 노하우 아니겠는가.
샤워 후 머리를 털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꽃향기를 맡았다. 향기는 집안 전체에 퍼져있었다. 비누 냄새 같기도 하고 방향제 냄새 같기도 한 재스민 꽃 향은 엄마가 쓰던 화장품 냄새다. 나에게 엄마는 바람이 불어야지만 문득 기억하는 냄새의 형태로 남아있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와서 화분에 부었다. 바람이 통하도록 창문도 한 뼘 열었다.
'이것'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전, 아빠의 49재를 마치고 돌아온 늦은 오후였다. 종일 한 끼도 못 먹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꽃 향이 느껴졌다. 종일 빈 집의 바닥에 깊게 깔려있던 농익은 향기가 공기 중으로 은은하게 퍼진다. 순간 허기가 밀려왔다. 나는 냉장고에서 두부와 소주를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두부를 데우고 간장과 참기름을 섞어 소스를 만들었다. 김이 오르는 하얀 두부에 까만 소스를 끼얹어 한 입 먹고 소주를 마셨다. 뱃속이 찌릿찌릿했다. 쥐어 짜내느라 엉겨 붙은 내장이 서서히 펴지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두부를 먹었다. 두 번째 술잔을 비우는 순간이었다.
"밥을 먹어라."
고개를 들어 TV나 휴대폰 동영상이 켜져있는지 확인했다. 다시 먹었다.
"밥을 먹어라."
밥을 먹으란 말은 내가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계속되었다. 시작이었다.
다음날부터 '이것'의 잔소리는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밥을 먹어라, 골고루 먹어라, 일찍 자라, 외투를 입어라, 우산을 가져가라, 운동을 하라... 모두 이음절로만 이루어진 말로 내 행동 건건이 걸고넘어지며 쏘아댔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환청이라고 했다.
"아빠 생각나서 그런 거 아니냐? 심리 상담을 좀 받아보지 그래? " 심지어 정신병까지 의심한다.
"아니 아빠가 생각나서 만들어 낸 환청이라면 문장으로 만들지 뭐하러 이음절로만 하겠어? 게다가 이왕이면 대화를 만들어내서 얘기하겠지, 무슨 이런 듣기 싫은 잔소리로 만들겠냐고. 내가 이 소리 듣기 싫어 스무 살부터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아 독립한 건데!"
사람들이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뿐이다.
한 번씩 '이것'을 향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만 좀 하시라고,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멀쩡히 밥벌이까지 하는 인간한테 사사건건 웬 잔소리를 그렇게 하시냐고, 그렇게 미덥지 않은데 어떻게 돌아가셨냐고, 내버려 두라고.
난 억울했다. 솔직히 소주를 마시는 사람에게 막걸리를 마시라고 하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는가. 나는 소주 파고 아빠는 막걸리 파였다. 아빠는 해 질 녘이면 동네 슈퍼에서 서울 막걸리를 한 병 사 와 멸치볶음이나 깻잎절임 같은 밑반찬과 함께 반주로 드셨다. 한번은 왜 막걸리만 마시느냐고 물었다.
"이게 맛있어. 유산균이 있어서 몸에도 좋고. 너도 한잔할래?"
"싫어. 난 막걸리 배불러."
한바탕 소리를 지르면 기다렸다는 듯 쌀 튀밥 같던 꽃봉오리가 팡팡 터졌다. 잡힐 듯하지만 절대 잡히지 않는 향기의 끝을 쫓다가 지쳐서 먼저 잠드는 쪽은 항상 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의 존재를 이해시키기는 포기했다. 그것보다 '이것'과 함께 사는 방법을 하나씩 찾고 있다. 일부러 '이것'을 등지고 앉아 마시고 있는 술병이 보이지 않게 한다던가, 방 안에서 유튜브로 홈트 영상을 크게 틀어놓고 누워있는다던가, 내가 생각해도 썩 기발한 방법들이 순간순간 떠올랐다. 이음절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잔소리로 유도하는 방법도 있었다. 예를 들면 술을 마시지 마라, 담배를 피우지 마라, 아무리 더워도 맨바닥에서 자지 마라 같은 것들을 말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입이 근질근질하고 약이 올라 이파리를 파르르 떨곤 했다.
'이것'의 잔소리에 제법 노련하게 대처해가던 어느 날 봄이 왔다. 한낮의 기온이 20도를 가리키는 5월, 나는 '이것'을 베란다로 옮겼다. 창문을 활짝 열고 호스를 수도에 연결하여 잎 사이사이에 낀 먼지를 꼼꼼히 씻기고 물을 흠뻑 줬다. 화분 밑으로 흙탕물이 빠져나가며 길을 만든다. 자세히 보니 웃는 표정의 눈과 입 모양이다.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 '이것'에게 물었다.
"기분 좋아?"
"여간 좋다. "
아빠는 살랑살랑 춤을 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