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80년, 10살이었던 나는 저녁시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저녁 밥상에서 TV를 보면서 광주에 빨갱이가 광주 시민을 선동해 폭동(데모라고 했는지 정확치는 않음)를 일으키고 있다고 하시면서 광주의 현실을 나무랐다. ‘저런 빨갱이 새끼들! 큰일이야!’ 하면서 걱정과 함께 광주시민을, 광주항쟁을 아주 부정적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줄 알았다. 아버지 말이 법이었던 시기고 시대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어 고등학생이 되어 참교육 하셨던 전교조 선생님들에 의해 그때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참혹했던 그때의 모습을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보면서 분개했다. 어린 나이라 몰랐던 것도 아니었고 어른이라고 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철저히 정보를 통제하고 왜곡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났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그때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여전히 80년 광주항쟁의 진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특히 광주시민에게 총을 쏘라는 지시를 누가 했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아니, 대충 심증으로는 알고 있지만 물증이 없다. 전두환이나 그 부하들은 모르쇠 일관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직 80년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어렸기 때문에, 정보통제 때문에, 오래 지나서,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이런 이유로는 통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고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제대로 된 권력이 탄생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주인의식이 없을 때 이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고 부패하는지, 그리고 서민을 죽이는지 우리는 바로 얼마 전에 혹독하게 경험했다. 그래서 더욱 80년 광주를 되살리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바로 우리 국민(서민)의 속물근성으로 인해 광주시민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5.16을 다룬 영화치고 아주 처절하지는 않다. 직접적으로 광주의 그 참상을 보여주는 방식 대신 제 3자의 눈으로 80년 광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대한 간접적으로. 그래서 영화는 충격이 덜하고 그때의 참상이나 처절함이 덜한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역으로 그래서 더 감동적이고 리얼했다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바로 미안함 때문은 아닐는지. 어리다고, 내 일이 아니라고, 잘못된 정보를 핑계로 소중한 민주주의를 망각하고 있었고 무관심했다. 이 미안함 때문에 <택시운전사>는 살짝 감동이 더 배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제 3자의 눈으로 광주항쟁을 다룬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참 궁금하다.
서울 택시 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은 동료를 따돌리고 돈(10만원)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서울에서 광주로 간다. 김만섭은 혼자 딸을 키우는 홀아비로 돈을 밝히는 굉장한 속물이다. 딸만을 위하면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이해 못하고 나무란다. 80년대 우리 아버지의 전형이다. 그런 그가 돈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를 택시에 태우고 광주로 간다. 계엄령이 선포된 광주의 현실은 지옥 그 자체였다.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참혹하게 폭력하고 죽이고 있었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국민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 광주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서울로 올라오려 하지만 택시가 고장 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룻밤을 신세지면서 광주 시민 –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과 광주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등 -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광주의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서서히 그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날 딸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서울로 혼자 올라오던 중 택시를 돌린다. 그러면서 혼자 말한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그가 변한 것이다. 역사를 깨치는 순간이다. 광주로 돌아간 그는 철저히 정보가 통제된 가운데 광주의 진실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독일 기자와 목숨을 건 탈주를 시작한다.
만섭과 독일 기자의 시점으로 본 광주! 그래서 영화는 몇몇 인물을 빼고는 계엄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거의 마지막,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에서도 누가 쏘는지 계엄군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총부리만 보여준다. 그래도 길지 않는 이 장면만 거의 직접적으로 80년 광주의 참상을 보여줄 뿐, 그 외 대부분은 광주의 참혹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령, 류준열이 어떻게 폭력당해 처참하게 죽는지 보여주지 않고 죽은 시체만 보여주는 식이다. 유해진도 어떻게 죽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속물 송강호가 그 날의 진실을 목도하며 서서히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송강호가 울먹이며 말한다. “미안합니다!” 그러자 광주 시민(유해진)이 말한다. “형씨가 뭣이 미안해.” 37년을 건너뛰어 나처럼 속물인 국민과 위대한 광주시민의 소통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 감독은 쥐어짜는 감동이나 80년 광주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피하고 왜 우리가 그때 광주의 진실을 외면했는지,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송강호처럼 미안해하라고. 아주 불친절하면서 영리하게 지독한 감독이다.
다만 이런 방식 때문에 지나치게 영화는 송강호의 1인극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송강호가 변화하는 과정도 치밀하지 못한데다 송강호의 비중이 너무 커서 다른 인물이 거의 살아나지 않는다. 송강호의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의도는 좋으나 80년 광주의 참상을 다루면서 광주시민이 빠진 느낌이다. 송강호와 다른 인물들(유해진과 류준열 뿐 아니라 광주 기자 박혁권 등의 역할이 더 들어갔어야 했다) 간의 조합이 아쉬워 감독의 의도가 살아날지 의문이다.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누가 광주시민을 총 쏘아 죽이라고 했는지 그 발포명령 한 사람을 반드시 밝혀 처벌해야 한다!!! 광주시민과 민주주의와 역사를 위해!!!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