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리뷰

by 방정민

<헤어질 결심>

‘사랑이 뭘까?’ 라고 묻는다면 인생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만큼이나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 인문학자들이 사랑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연구도 했다. 그런다고 사랑에 정답이 있겠는가. 박찬욱 감독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연구를 탐미적으로 해 온 감독이다. 이율배반적이며 복잡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끝 간 데까지 밀고 가서 그 마지막에 처참함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미장센이라는 영화적 장치로 풀어내는데 뛰어난 감독이다. 복수 3부작이 그랬고, <박쥐>, <스토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가씨>가 그랬다. 이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끝없이 탐구하고 탐미하는 감독이 또 있을까. 박찬욱 감독이 이번에는 사랑이라는 외피에 그리고 영화적으로는 수사극이라는 장르적 갑옷을 입고 또 다시 인간의 감정에 대해 깊은 응시를 보여준 영화 <헤어질 결심>을 선보였다.

해준이 큰 사건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는데, 산 정상에서 추락한 남자 기도수의 변사 사건이 발생한다. 형사 해준(박해일)은 기도수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한다. 남편의 죽음에 키득대면서 전혀 동요를 하지 않는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그녀를 수사한다. 해준은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하면서 서래 주위를 맴돈다. 그런데 그러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 한편,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서래는 형사가 자신을 의심하고 잠복수사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사 해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데 망설임이 없다. 해준은 자살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덮는데, 그 직후 뭔가 이상한 단서가 뛰어나온다. 그러나 남편 폭력과 추방의 두려움 아래 있는 서래의 삶을 알고 나서는 끝내 사건을 덮어버린다. 시간이 흐르고 해준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 형사일을 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서래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을 만난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서래의 남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준은 이번에는 반드시 서래를 구속시키겠다고 다짐하며 수사를 벌인다. 그러나 수사할수록 이번에도 남편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서래가 연루되었을 뿐 직접적으로 남편을 죽였다는 단서는 없다. 해준은 서래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자신도 헷갈려하고 복잡미묘한 감정에 어쩔줄 모른다. 이런 해준을 서래는 이용하는지 이용당하는지 알 수 없는 행동과 감정으로 그를 대한다. 해준 주위를 맴도는 서래! 끝내 둘은…


넥타이와 양복 입고 수사하는 형사, 남편 죽음에 전혀 놀라지 않고 끼득대는 중국아내. 영화 거의 처음 장면이다. 의도적 리얼리티의 위배다. 이 위배를 시작으로 감독은 아주 복잡미묘한 인간의 감정, 그것도 사랑이라는 감정놀이를 시작한다. 형사가 분명 수사하는데, 또는 잠복수사를 하는데 관객은 이것이 수사라는 느낌이, 잠복수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형사 박해일의 수사적 상상력을 탕웨이와 같이 있는 장면으로 치환해서 보여주는 씬, 밖에서 망원경으로 탕웨이 집과 탕웨이의 행동을 보는 장면 등은 이것이 관음인지 호기심이라는 사랑의 감정인지 헷갈리게 장치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탕웨이를 바라보는 박해일의 눈빛은 수사와 거리가 멀다. 이것을 박해일도 안다. 그래서 형사 박해일은 자신이 형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하나 잘 되지 않는다. 수사와 여자를 사귈 때의 눈빛, 이 두 가지의 눈빛과 감정 사이를 마구 오간다, 스스로 헷갈려 하고 주체 못하면서. 수사도 용의자를 관찰하는 것이고 사랑도 상대방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감독의 교묘한 수사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왜 감독은 인간의 감정을, 그것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수사라는 영화적 장치로 풀어냈을까. 용의자에 대한 형사의 관찰과 마음이 어쩌면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마음,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사고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인간의 감정이,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복잡미묘하고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런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한 마디로 묘사할 것이며 또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과 미움, 의심과 믿음… 이런 감정은 어쩌면 인간의 운명이자 한 단면이지 않을까. 동전의 양면이라는 표현으로 다 채울 수 없는. 그래서 영화 말미 탕웨이는 말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 나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이 끝났다고 할 때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엇갈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순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엇갈림 가운데서 둘은 사랑과 미움, 그 사이 표현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선을 오가며 상대를 외면하고 자신을 속였을 것이다. 그래서 박해일은 계속 눈에 안약을 넣는다. 그런데도 눈(밖)은 선명하지 않다. 무엇이 정답인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안약으로 보이는 인간의 감정,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러자 마침내 탕웨이는 말한다. “깊은 데 버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완전 붕괴 됐어!” 탕웨이의 진심(?)을 알고는 뒤늦게 박해일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려고 탕웨이를 해변가에서 찾는다. 그럴수록 자신의 신발끈은 자꾸 풀려지고, 매고 매도 다시 풀려진다. 붕괴(해변가에서 스스로 파서 들어간 굴)되어버린 탕웨이의 사랑(?) 또는 감정은 만조의 바닷물이 덮어버린다. 박해일이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이젠 찾을 수 없다. 완전 붕괴되어버린 것이다. 이토록 인간의 감정이 힘들다. 사랑은 더더욱 고통스럽다. 이쯤이면 진심이라는 단어는 불필요하다. 박해일에 대한 탕웨이의 감정(저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갖고 싶다는 탕웨이의 말을 박해일은 자신을 이용한 것이라 처음에는 생각함)이, 사랑이 진심이었는지, 박해일은 진심으로 탕웨이를 사랑한 것인지 묻는 것은 의미 없다. 그저 붕괴되어 가는 감정을, 사랑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탕웨이의 묘한 얼굴이, 또는 그의 연기가 이런 영화적 주제에 너무 잘 맞아 그저 신기할 뿐이다. 박찬욱 감독이 이런 주제를 위해 펼쳐놓은 양식은 다채롭다. 두 배우의 시선과 시선을 통해 감정을 묘하게 전달하고 있고, 한국과 중국 사람이라는 설정 때문에 디지털기기의 도움을 받는데 이 또한 인간 감정의 복잡함을 치환한 것이다. 즉 같은 국민이라도 우리는 어떤 매개체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전히 타인의 감정과 교류하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사소한 유머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도 헷갈리는 이상한 디테일(엑스트라 수준의 짧은 에피소드를 최고 수준의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부분 등)이 섞여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사랑에 대한, 인간 감정에 대한 응시가 정말 단순하면서 깊어졌다. 누구나 다 아는 이런 복잡미묘한 인간 감정을 수사극이라는 장르로 풀어낼 수 있다니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단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단순한 멜로물이라고 했는데, 아주 재미있는 멜로물이 아니다. 보통의 멜로물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재미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제나 채울 수 없는, 미결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응시와 풀이는 해변가에서 스스로 파묻힌 탕웨이와 그녀를 애타게 찾는 박해일의 모습, 그리고 만조의 바닷물이 말해주고 있다. 이것으로 마침내 이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제목이 충분히 이해되었고, 충만해졌다.


개인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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