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빠져나갈 기회를 찾는 다정함에 대하여
-산문집 '밀어' 중, 김경주
무료함을 무사히 견딘 주말, 뜬금없는 반성을 한다.
나를 애정 했던 사람들을 대하던 나와,
내가 애정 했던 사람들을 대하던 나에 대해서.
시간을 떼어주듯, 나를 할애한다고 생각했던 연애가 있었다.
그때, 애정의 몸짓으로 불성실을 덮었다.
기억 속에 있던 열정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려던 연애도 있었다.
그때, 말들은 기화되고, 표정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때 내가 내보인 애정은 상대방에게 온당했을까.
나에게 적당했을까.
나라는 출구를 나온 애정은 하나의 형태로만 전개되는 줄 알았다.
한 종자에서 나온 싹이 같은 색깔이듯,
싹이 커가며 굵어지는 줄기와, 줄기의 길목마다 맺어지는 잎들이 같은 모양이듯.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더 애정 하는 사람이 나였건, 상대방이었건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밖으로 나온 애정은 늘 새로운 모양으로 컸고, 새로운 형태로 사라졌다.
과연 나의 애정은 입구를 찾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출구를 찾던 것일까
다정은 늘 상대를 필요로 하기에,
다정한 언어는 늘 둥글고 친절하다.
내 안에서 머물던 애정의 유통기한이 임박할 즈음,
출구를 마련해주기 위해, 난 애정의 언어를 과잉 생산했던 게 아닐까.
누구라도 좋아, 식은 아니었지만,
나의 다정을 가만히 얹어도 슬쩍 눈감아 줄 만한 누군가에게,
나를 활짝 열고 애정을 내보냈던 건 아니었을까.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눈치챌 만한 다정함을 한껏 내보이면서.
하지만, 애정에 대한 이런 단순한 비관은
단지 무료함을 견딘 주말의 밤이라 잠깐 드는 것일지 모른다.
원래, 애정은 그렇게 무책임하지 않으니까.
출구를 나온 애정은 잠깐의 비행을 거쳐 하나의 입구로 들어가니까.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그 궤적은, 나와 상대방 둘 다 바라보는 거니까.
서로의 볼을 바라보고, 그 볼에 난 솜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건 두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