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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25. 2019

광기는 과연 숲 속으로 사라졌는가

[ 더 캡틴 (Der Hauptmann) ]  2017년 작

하켄크로이츠(나치 깃발)의 붉은색이 인상적인 포스터와 달리,

영화는 내내 흑백이다.


색이 한정적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게 주인공눈빛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눈을 따라잡기에

어쩌면 최선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기 2주 전,

탈영한 독일 이등병 빌리 헤롤트는 우연히 버려진 차에서 트렁크를 발견하게 된다.

트렁크 안에는 장교 군복이 고스란히 놓여져 있다.

옷을 갈아입고 허기를 달래던 그의 앞에 나타난 한 낙오병의 경례.

헤롤트는 그때부터, '헤롤트 대위'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히틀러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아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도중에 만난 병사들을 모아, '헤롤트 기동 부대'를 만든다.

탈영병을 수용하는 수용소에 합류하게 된 헤롤트는 순간적인 거짓말과 다른 장교들의 맹목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경범죄를 저지른 탈영병 90명을 즉결심판으로 총살하는 학살을 저지른다.


영국의 폭격으로 수용소가 초토화된 후, 그는 살아남은 팀원들을 데리고 다시 독일의 후방 마을을 돌면서 '조국을 배신한 사람들'을 즉결 심판하는 헤롤트 기동 부대를 계속 이끌어 나간다. 그러던 도중 결국 헌병에게 잡히면서 '이등병' 헤롤트의 정체가 드러나고 군사재판에 넘겨진다.


하지만, 헤롤트는 교묘히 탈출에 성공해 숲 속으로 사라진다.



과연 그의 적은 누구였을까?

세계 2차 대전, 나치 시대의 영화들은 대개 적군과 아군이 분명하다.

주로 연합군 쪽 입장의 영화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독일은 늘 적군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실상 적이 나오지 않는다.


독일군 이등병 헤롤트는 독일군 장교 행세를 하며, 자국의 후방을 돈다.

그의 파괴적 본능이 절정에 달하는 제2 수용소 역시 독일인 탈영병들을 가둔 곳이다.

익숙한 2차 대전 영화의 장소, 즉 총탄이 오고 가는 전선은 없는 셈이다.



대신, 헤롤트는 자신의 일생일대의 연기를 들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들키면 바로 파멸에 이를 상황에서,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과 긴장감을 유지한다.


영화 초반 헤롤트의 거짓말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평범한 독일 장교가 내릴 수 없는 명령들을 반복하며 수용소에서 학살을 주도한다. 그의 부하와 다른 장교들이 '이건 법령에 어긋난다'라고 하면, '총통에게 위임받았다'라고 말할 뿐이다.

이 단계에서 그는 주체할 수 없이 깨어난 자신의 파괴적 본능에 지배당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의 적은 그 자신이라고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어두운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헤롤트의 거짓말이 쉽게 드러나지 않은 이유 역시, 인간의 또 다른 본능과 관련이 있다.

그건 바로, 


각자의 처지를 이용하며
서로에게 지배당하는 본능이다.

이는 헤롤트가 가짜 장교임을 처음부터 눈치챘지만 자기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 모른 체하는 병사의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어차피 다들 서로의 상황을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대위님?"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또 다른 장교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헤롤트의 극단적 행동이 자신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자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공생 관계 혹은 이해관계의 거래는 사회적인 관계망에서 당연한 본능이지만, 어느 한 구성원이 잘못된 판단을 했을 경우에는 그 악이 걷잡을 수 없이 재생산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헤롤트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택한 몇 번의 전략은, 결국 90명의 수용자를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말 부분, 군사재판의 재판장은 헤롤트를 정신이상자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의 장교 그가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고 패전한 독일의 최전방에서 활약할 인재라고 말한다.


극단적 광기를 보인 그는 정신착란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종족에 내재된 본성을 드러낸 것뿐이었을까.

수십 명을 총살한 뒤, 술 파티를 벌이던 중 부하 병사들이 서로 주먹다짐을 하면서 동물적 본능이 깨어나는 장면이 있다. 서로 싸우던 그들은 같이 웃으면서 그 자리에 앉아서 늑대처럼 울부짖는다. 그들은 규율과 법칙에 가려져 있던 파괴적 광기를 내보여도 되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한다.

이 상황을 만든 헤롤트의 잔인한 행동 역시 극에 달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쉽게 비판하는, 나치 독일의 시대정신은 그렇게 끝난 것일까.


집단적 허상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하는 환상적 집착은,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본능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굳이 2차 대전이라는 광기의 시공간이 아니더라도, 폭력적 상하관계와 비합리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모든 인간 집단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 복종하고, 끝없이 눈치를 보면서,
우리의 파괴적 본능을 터뜨릴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재판 중 도망친 그가 인골이 수없이 흩어져있는 검은 숲으로 사라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끝없이 각자의 내면을 감시하며 인간다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은 광기를 끝없이 억누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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