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Jun 02. 2019

3층이라는 고도만으로

#낮 산책 : 종로 세운상가 공중 보행교

"자네 옛날에는 좀 더 순진했는데."

나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라고 대꾸하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아마 어딘가에 순수한 마을이 있고, 그곳에선 순진한 푸줏간 주인이 순수한 로스 햄을 썰고 있겠지. 대낮부터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순수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마시라고"


-소설 '양을 쫓는 모험' 중, 무라카미 하루키




모든 것을 살균이라도 할 것 같은 볕이다. 거기에 그림자가 가장 짧은 정오 무렵이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등에 땀이 조금씩 밴다. 잘 정비된 길에 사람은 많지 않다. 담 앞에서 물건들은 가지런하다.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이는데도.  


햇볕이 깜빡거린다.

착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전히 시야는 밝다. 달리 다리 쉼을 할 데도 없고 할 필요도 없어서 그냥 걷는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몇 장을 찍는다. 뷰파인더를 보지도 않는다. 별다른 고민 없이 카메라를 이리저리 휘둘러도 좋은 날이다. 사나워 보이는 풍경이나, 정제되지 않은 풍경도 좋다. 눈이며 카메라로 마구 담아내도 미화되거나 뭉개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풍경을 빌린다.


종묘 공원에서 길을 건넌다. 역시나 뷰파인더는 보지 않는다. 이곳의 횡단보도는 유난히 차도 느낌이 난다. 차로 중간에 있는 버스 정류장 보도와의 높이차가 적어서이기도 하고, 폭이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넓기도 해서다. 사진을 찍고 보니, 유난히 횡단보도의 도료에 묻은 얼룩들이 많아서인 듯도 하다. 대로의 너머에서 바로 세운상가의 광장이 시작된다. 광장은 도로보다 얼룩이 적고 깨끗하다. 사람이 대로변보다 적어서겠다.


어느 요일, 어느 시간에 가도 이곳은 한가하다.


한가함을 의도한 공간이 아니었기에 누군가는 조바심을 날 테지만, 한적함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출근길 루트에 이곳이 있다는 게 행운이다.  



공중 보행교가 있는 3층까지 올라가 난간에 기댄다. 건물의 3층은 도시를 조망하기에 충분한 높이가 아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찍은 전경은, 전격적이라기보다는 순하다.

주위와 불화하며 용 솟은 건물은 보이지 않고 나무들은 시야의 높이로 존재한다. 건물과 나무, 사람들의 윗면만 보이는 게 아니라, 전신(全身)이 드러난다. 풍경 속의 모든 작은 것들이 표정을 갖는다.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전망대로 올라가지 않기로 한다. 물론, 회의시간이 빠듯한 이유도 있지만.



공중 보행교는 여유롭다. 지은 지 오래된 본 건물과 새로 지은 가장자리의 공간은, 넓은 길로 선명하게 나뉘어있다. 오래된 건물도, 새 건물도 모두 직선의 조형미를 갖고 있다. 길 위로 볕도 직선으로 내리게 돼 있다.  어쩌면 멀지 않은 과거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가를 원형(原形)으로 상정하고 만들었지 싶다. 이 공간에 사람이 쉴 새 없이 붐비면 직선의 공간은 꽤 볼만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실패했다.


옛날의 순진했던 누군가가 이미 존재하지 않듯,
원형으로 가정했던 과거의 영화(榮華)는 재현되지 않았다.

이 공간에 사람들이 당연히 기대하리라 생각한, 순수한 혹은 순진한 과거는 이미 사라졌다. 과거의 사람들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이 왔어야 하는 곳이다. 사람이 들어서지 않는 직선의 공간은 그 솔직함으로 인해 더욱 휑뎅그렁하다. 한 곳에 서서 모든 곳이 투명하게 보인다. 차라리 어딘가에 불투명한 공간을 숨겨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으면 가벼운 호기심으로라도 공간은 조금씩 현재의 사람들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물론, 빈 공간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지금의 보행로가 더 매력적이지만 아쉽다.



모든 꽃은 성실하다. 심긴 곳이 어디 건,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 꽃잎을 펴낸다. 옆에 다른 꽃이 있건 없건 관계없다. 누구는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있고, 자기는 아니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볕 쪽으로 가지가 뻗을 만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


꽃은 피는 것으로 모든 의견을 대신한다.



이곳에선, 길 위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높이 설치한 것들이 눈 앞의 풍경이 된다. 기울어진 전신주와 온갖 선들은 직선의 공간에 곡선과 요철을 더한다. 그 너머 낡은 건물 벽체의 선과 색은 우연처럼 어우러진다. 고작 3층의 고도만으로도 눈은 매력적인 풍경을 접한다.


그리고 이내 익숙해진다.


공중 보행교는 청계로와 청계천을 가로지른다. 두 상가 건물을 잇는 선은 건물의 왼쪽, 오른쪽 두 갈래다. 각 건물의 입장에서 왼, 오른 은 갈리기에 딱히 지정할 순 없다.


청계천 근처의 풍경은 건물의 원색으로 인해 거침없다. 지금은 조용한 택배 트럭은, 주말이 끝나면 옆면을 전부 열어 짐을 채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짐이 가득한 채로 먼 곳에서 올라와 작업자들이 올 때까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둘 중 무엇이건, 내일이면 풍경은 매우 산만해질 것이다.



맞은편의 보행교에선 사람들이 음료를 즐긴다. 사진 속 얼굴이 구별될 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훔치듯 찍는다. 잠시 향유하던 그들의 여유는 몇십 분 혹은 몇 시간 뒤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여유는 일시적이다. 그 찰나를 당연한 듯 즐기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먼지 걱정도 더위 걱정도 없는 날에, 지상에서 3층 높이 정도 떠서 차를 마시는 건, 순간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라곤 햇볕밖에 없고, 발아래의 풍경에선 이물감이 올라오지 않는다.


눈을 어디에 두어도 편하고, 자신의 움직임은 돋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문을 닫은 전시장을 지나친다. 깊게 감상하지 않고, 선명한 색감만 즐긴다.



오른편으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하늘을 닮은 색의 장막을 일부러 두른 듯하다. 장막 안에선 오래된 흙이 헤집어진다. 그 흙 속에서 반가운 무언가가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알 턱은 없다. 곧 구획을 지으면 땅은 다시 다져질 것이다. 그 뒤로 올라갈 새로운 건물에는 수백 개의 사무실이 생기고, 수천 개의 화분이 놓일 것이다. 그리고 점심이 지나면 비슷한 구취(口臭)를 가진 사람들이 그곳을 오갈 것이다. 그들의 무게로 땅은 다시 안정될 것이다. 장막 안의 일도 장막 후의 일도 나와의 관계없이 진행되지만, 새롭게 보게 될 그 풍경이 벌써부터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그저, 이곳에서 바라보는 그곳의 풍경이 시끄럽지는 않았으면 한다.


걸어서 출퇴근을 할 때면 꼭 멈춰 서서 보는 건물이다. 매번 이곳의 빈티지스러움만 취하진 않는다. 이 건물을 보고 있으면, 술 취한 다음날의 회사원을 보는 느낌이 든다. 기분 나쁜 일을 술 마시며 흘려보내려다가 꿉꿉한 기분만 안고 일어나 겨우 사무실에 출근한 그런. 하루하루 갈수록 그런 일들은 적절한 흔적을 남기고 잊힌다.


여기저기 녹물과 공사 흔적으로 가득하지만, 어느 공간하나 버리지 않고 공고히 서있는 이 건물처럼, 우리도 대충 버티며 늙어갈 것이다. 문득 옷을 벗고 찬찬히 살펴보면 어느 구석 하나 예전과 같지 않겠지만.



업(業)이 전면에 드러난 풍경을 평가 대상이 아니다. 이곳에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많은 풍경이 그렇다. 하지만, 그곳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나에게는 감상 대상이긴 하다. 업의 공간에도 최소한의 디자인이 있고, 최대한의 색의 있다.


스쳐 지나가는 산책자에겐 그런 것들이 도드라진다.



3층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제야 비로소 상가의 무게감이 드러난다. 건물 출입구외엔 막힌 곳이 없는 저층 공간은 의외로 아늑하다.



상가를 돌아 나와 다시 도로 쪽으로 걷는다. 바로 앞 도로의 공사장 역시 보행로를 확보해놓았다. 사람들과 차들은 횡단보도에서 서로 엇갈리며 움직인다. 눈에 담기는 풍경에서 한적함이 사라진다. 파란 불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 공중 보행로를 걸을 때의 여유도 사라진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곧 쉼 없이 걸어가서 회의를 시작할 것이다.


크게 서운하진 않다. 눈이 일찍 떠지는 어느 아침이나, 술 약속을 잡지 않은 어느 저녁에 다시 걸으면 될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되도록 담백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