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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22. 2020

기분이라는 무지

불면이 잦아졌다. 원치 않는 각성이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어느 누구는 편하게 자고 있을 시간에 왜 혼자 불안해하는지 고민하다 보면, 결국 바닥을 뚫고 내려가 있는 기분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도대체 내 기분이란 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내 기분은 오지를 싫어한다. 낯선 상황을 겪을 때, 나는 오락가락한다. 새로운 곳에 적응해서 평정심을 찾으면 좋으련만, 새로운 상황과 사람을 떠올리고 나만의 판단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내 기분은 작은 원을 그린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아버린 어느 날부터. 화를 낼 때도 나는 완전히 나를 벗어나지 못한다. 내 환호성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기뻤을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낯선 환경과 염세적인 성향 탓을 해도, 가라앉은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요즈음 내가 특별하게 낯선 상황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냉소할 만큼 큰 사건을 겪지도 않았다. 늘 살던 대로의 일상에 불면이 끼어들었다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분이 욕심에 민감해서 그런 건 아닐까. 


평정심은 욕심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왜곡된다. 채워진 욕심에도, 도달하지 못한 욕심에도 기분은 휘둘린다. 뭔가를 바라는 탓에 뭔가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많은 걸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신하던 나이가 지나면서 욕심이 부쩍 다양해졌다. 욕심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기분이 휘청댄다. 


욕심을 이해한다 해도 욕심을 줄이거나 없애는 건 힘들다. 내 통제 밖의 욕심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면, 욕심에 뒤따르는 기분 역시 시시때때로 내 통제를 벗어난다. 그렇게 욕심과 기분의 폐쇄회로가 오류를 일으킬 때, 나는 불면에 시달린다.  


결국 어느 밤에, 기분이라는 무지(無知)를 다시 마주할 것이다. 


그럴 땐 추락하는 기분의 꼬리라도 잡고 따져봐야겠다. 내 기분을 덮고 있는 막을 하나씩 벗기다 보면 뿌연 욕심이 드러날 것이다. 뭘 욕망하는지 알게 되면, 기분 탓만 하며 내가 싫어하는 표정을 잔뜩 얼굴에 띄운 채 밤을 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대낮에 사무실에서 꾸벅꾸벅 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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