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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Oct 18. 2019

이스탄불 밤거리의 은밀한 소음

#터키 이스탄불 밤 산책

이런 곳은 한밤중엔 아마 유령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산문집 '패스포트' 中, 김경주





밤이 내리는 속도는 한국과 같다.


인공의 빛 사이에서 떠오른 달이 불투명한 빛을 뿜을 때 즈음, 눈에 보이는 모든 자취가 다른 색을 띤다. 7시 30분에 예정돼 있던 약속은 10분 전에 갑자기 취소됐다. 일행과 별도로 움직이려 밤 일정을 빼놨던 터라 밤 시간이 비어버렸다. 짧은 일정, 가족과 함께 한 패키지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요행이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탁심까지 일행과 버스로 같이 온 후 내리자마자 몸을 돌린다. 이어폰은 두고 왔다


이곳의 소음이 그리웠다.


기도 소리가 여러 모스크에서 뻗어 나온다. 누군가의 간절함 혹은 신실함은 별다른 방해 없이 밤하늘 속으로 스며들다가 사라진다. 일요일 저녁 8시 대로변의 버스 정류장은 조용하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크지 않고 그들의 시선은 어지럽지 않다. 잠시, 무탈한 하루를 보낸 직장인처럼 사람들 옆에 서 있는다. 횡단보도 앞의 택시 안에서 기사는 무언가에 열중이다. 달리는 차들이 한 방향에 열중인 것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백열등 색이다. 새삼 안도가 된다.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는 벽을 지나친다. 낮에는 신경 쓰지 않을 풍경이다. 겹겹이 붙였던 것들이 잊힌 것들 특유의 질감을 풍긴다. 골목을 올라와 이스티크랄 거리로 나온다. 주말 밤, 사람들은 모든 방향에서 모든 방향으로 걸어 다닌다. 심지어 속도를 늦추지도 않는다. 마치 이 거리에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걸음속도도 사람들과 비슷해진다. 살짝 웃음이 나면서도 멈출 순 없다. 걸으면서 셔터를 누른다.


찰나에 담긴 사람들이, 이내 앵글 밖으로 사라진다.


과일 장사의 노점에 벌레는 없다. 과일을 사지 않을 라 굳이 멈춰 서서 감상하진 않는다. 선명한 색의 과일들이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색의 배열은 자연스럽다. 허공에 살짝 떠 있는 듯한 과일의 색들은 한밤중이 되면 이스탄불의 밤공기 안으로 사라질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밤 안으로 과일들을 다 팔진 못하겠지만 상점 주인은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는 큰 소리로 호객을 하지 않는다.



한가한 상점가 골목으로 들어간다. 조용한 아줌마가 앉아 있는 장신구 가게에서 목걸이를 하나 산다. 130리라. 우리 돈으로 2만 6천 원. 살짝 흥정하고 바로 수긍한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다. 받을 사람의 목을 무심코 떠올리다가 목걸이를 포장하던 주인아줌마와 눈이 마주친다. 손님들의 은밀함을 자주 목격한 듯한 눈이다. 편한 마음으로 돈을 지불하고 나선다.


등 뒤로 그녀가 조용히 목걸이를 닦는 소리가 들린다.



골목마다 좌판이다. 의자와 테이블도 제각각이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제각각이다. 일요일 밤인지라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 음악은 시끄럽게 흘러나오지 않는다. 사람들 역시 소리 지르며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건 일요일 밤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빈자리와 채운 자리 사이를 느리게 걷는다. 왁자함이 없어질 늦은 밤이면 골목은 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지도 상에 없는 골목처럼.


굳이 혼자 앉아 술을 비우기는 애매하다. 계속 걷는 편을 택한다.



이스티크랄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튀넬(이곳부터 갈라타 다리까지 운행하는 오래된 지하철) 역이 있다. 그곳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나있는 골목부터 풍경이 많이 바뀐다. 브랜드 옷가게와 몰, 화려한 레스토랑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직접 그리고 만드는 조그만 숍들이 나타난다.


이곳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느긋다. 속도를 내지 않는 차들은 경적소리도 내지 않는다. 사람들의 보폭보다 조금 빠를 뿐이다. 물건과 사람과 차들이 한데 뭉쳐서 언덕 아래로 천천히 흘러가며 낮은 소리를 낸다.  


그 흐름에 무임승차하기로 한다.


화려하지 않은 불빛 사이를 걷는다. 터키어와 러시아어 사이에서 주스와 돈이 오간다.



이스탄불의 상징 중의 하나인 갈라타 타워의 조명도 눈이 편하다. 현란하게 치장하고픈 욕망 따위는 없는 사람이 디자인한 듯하다.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덕분에 조급하지 않다. 9년 전 여행을 왔을 때 갈라타 타워의 전망대에 올라가 고소공포증으로 벽에 등을 붙이고 천천히 움직이던 기억이 난다. 탑은 아래에서 보는 게 맞다.


1.5리라를 주고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데, 자기 몸도 못 가누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계단 왼편에서 울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고양이 사랑을 알기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  깨끗하게 관리된 물그릇과 밥그릇이 놓여 있다. 새끼의 소리를 들은 어미 고양이도 곧 돌아올 것이다.


이 골목의 모든 소리엔 이유가 있다


골목 깊숙이 있는 슈퍼에서 조그만 콜라를 산다.


나이 지긋한 주인과 나 사이에 말은 필요 없다. 적당한 지폐를 건네고 잔돈을 받고 서로 빙긋 웃는다. 한국에선 거의 안 먹는데 여행만 오면 탄산음료를 자주 먹게 된다. 낯선 것을 보러 왔으면서도 최소한의 낯익음이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미니 콜라는 몇 모금 만에 없어진다. 병을 버릴 곳이 눈에 뜨이지 않아 덜렁덜렁 들고 다닌다.



뷰파인더도 보지 않고 셔터를 누르다가, 찍힌 사진을 보고 멈춰 섰다. 눈에 들어온 풍경이 매력적이다.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다. 누군가에겐 매일 걷는 계단이겠지만, 잠시 들른 나에겐 행운 같은 공간이다.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서서 감상한다. 9시가 넘은 시간, 계단오가는 사람은 없다. 가로등과 점포 불빛에서 나오는 낮은 소음이 귀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만족스러운 밤이다. 매우.


걸어 내려오는 내 등 뒤로 모든 풍경이 스르륵 닫히는 상상을 한다. 내 걸음에 맞춰 모든 불빛이 툭툭 꺼지고, 떠들며 내려오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표정을 지우고 각기 다른 골목으로 사라지는 그런 상상. 오늘 하루의 소임을 다한 풍경이 유령처럼 사라져 제 집을 찾아들어가는 그런 상상.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했던 소설 <검은 책>에서 묘사했던 마네킹 가게가 생각난다. 수 세기 전부터 이스탄불 사람들을 모델로 해서 만든 수천 개의 마네이 있는 지하실이 있다는. 운 좋게 어느 입구를 찾아들어가면, 잠시 스쳐갈 뿐인 이 도시의 모든 걸 한눈에 흡수할 수 있을 텐데.



낮은 조도의 골목이 끝나면 대로가 나온다. 대로는 바로 보스포러 해협에 놓여진 갈라타 다리로 이어진다. 일행과 합류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다리에 도착한다. 낮에는 빽빽했던 낚시꾼들이 이제 듬성듬성이다. 난간에 팔꿈치를 올리고 검은 물을 들여다본다.


인공의 빛으로 인해 물이 경계를 갖는다.


그 소설에서 작가는 사람들이 바다에 밀어 넣은 물건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정확히는 해협의 물이 다 빠지면 드러나게 될 여러 가지 물건들에 대해서. 나도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지만 영영 사라져서는 안 될 무언가>를 터키로 하나 들고 갈 걸 그랬다. 그랬다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저 검은 바다에 슥 던져놓고 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10년쯤 지난 언제쯤 이스탄불에 다시 올 이유가 하나 더 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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