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표정만 잔뜩 짓다가 집으로 오는 날이 있다.
내 의도 따위 상관없다는 식으로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여,
나조차도 재현할 수 없는 표정들을 무책임하게 흘리고 온 날.
그런 날이면 드는 생각.
누군가 내 삶에 주석을 달아줬으면...
누군가가 내가 뒤에 흘리는 것들을 쓸어 담아
눈에 잘 띄지 않는 페이지 아래에 잊지 않게 쌓아둔다면,
그러면,
변변한 논리 몇 개 없는 삶을
미스터리한 공기로 포장할 수 있을 텐데.
이 밤, 더 어지러워질 내일을 두려워하며
평온을 억지로 지어내지 않아도 될 텐데.
무턱대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떠올리지 않아도 될 텐데.
일부러 물속으로 던졌던 단어와 문장들을
굳이 끌어올리지 않아도 될 텐데.
소등되지 않는 전등을 노려보며
내 눈 안 실핏줄들의 지도를 그려보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렇다면,
환멸과 지루함, 그 사이 어디쯤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출입금지 푯말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며
소로(小路)만을 고집하며 떠날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