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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Nov 16. 2019

흥아실업 남자

남자가 모는 오토바이는 골목을 돌아다니기 위해 개조된 것이다. 

쓰레기 봉지들은 천천히 오토바이에 실렸다가 큰 도로변에 부려진다. 

그가 군데군데 모아놓는 쓰레기들은 늦은 밤, 흥아실업 트럭이 와서 수거해간다. 


흥아실업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의 오디오 게이지는 늘 중간 이상이다.  

마후라가 터진 오토바이는 엔진 소리를 사방에 흘리고

쓰레기 봉지들을 싣는 그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투덜거림의 억양과 가벼운 욕설의 음조를 가진 중얼거림이다. 

게이지가 올라있는 동안 그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를 때 그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선생님들이 그에게 가르쳐주는 건 현재 시각 정도다. 서로 건넬 말이 빈약한 관계다. 

숫자를 물어보고 숫자를 건네받을 잠시 동안, 남자의 게이지는 낮아진다. 


내가 사는 집 앞 골목에 그의 베이스캠프가 있다. 

흥아실업 글자가 선명한 오토바이는 낮 시간 동안 그곳에 세워져 있다. 

폐지를 모으는 부부의 리어카의 바로 옆이다. 

전봇대에는 형광색 작업복 윗도리가 옷걸이에 매달린 채 걸려있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옷은 진자운동을 하며 옷에 묻은 것들을 떨어낸다. 


오토바이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내가 남자 대신 흥아실업에 교체를 건의해야 할 정도로 낡은 오토바이다. 

처음에 대여섯 번쯤 큰 소리를 내줘야 안정적인 엔진 음이 시작된다.  

오토바이가 멀어지거나, 다시 골목으로 돌아오거나 하는 걸 

나는 집 안에 앉아서 다 알 수 있다. 


새벽 5시를 전후해서 그의 일은 끝난다. 

흥아실업의 트럭이 큰 폐기장으로 이동하고 있을 시간에 

그는 자신의 베이스캠프에 주차를 한다. 

폐지를 모으는 노부부와 흥아실업 남자는 늘 짧은 대화를 한다. 

창문을 통해 엿듣는 나로서는 그들의 표정을 알 수 없지만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웃지 않는 대화다. 


정리정돈의 시간이 끝나고 부부가 거리로 출근할 때 

남자는 자신의 게이지를 오토바이에 끌러두고 조용히 골목을 걸어 나간다. 

골목에 또 다른 소음들이 하나씩 들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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