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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Nov 16. 2019

나는 미진하다, 는 오랜 덫

나는 미진하다

라고, 생각한 몇 번의 계기가 있었어. 집으로 가는 길, 나 자신을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은 기분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은 꽤 오래된 것이더라. 어릴 때도, 대학생 때도, 직장인인 지금도 나의 능력과 내가 성취한 것들에 대해 늘, 부족하다는 느낌을 안고 살고 있었어. 그런데 이런 강박이 과연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과연 저런 강박은 어디서 왔을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성실>하도록 강요받았어.

그리고 이런 성실의 결과로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무엇이든 열심히 공부해야 했고, 남보다 좋은 점수를 얻어, 남보다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야 했어. 평소에도 남보다 더 도덕적인 사람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성실히 스스로를 돌아봐야 했고. 뭔가를 이뤘을 때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서 위에서 인정받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인성과 평정심까지 배워야 했지. 그런 건 꽤 선명한 강요였는데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난 그 '대원칙'을 거부한 경험이 거의 없어. 아마 비슷할 거야 다들.


우리는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당연시하다 보니, 

어느새 <성실한 인간형>만이 인생의 목표가 된 착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을 낮추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한 자해적 습성까지 갖게 돼버린 게 아닐까. 그런 자기 파괴적인 겸손의 결과로, 어느 상황에서건 써먹을 수 있는 쉬운 답안을 갖게 된 게 아닐까. "나는 미진하다.",라고 말이야.


그런데 과연 그게 맞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면, 자기만 낮아질 뿐이잖아.

미진하다고 생각하고 더 노력하게 되는 게 아니라, 미진하다고 생각해'버리게' 되잖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도 혼자 자기를 낮잡아 보게 되잖아.

부족한 게 없는 상황에서도, 부족한 걸 채우려고 두리번대는 바보가 되잖아.

행복할 때 그냥 즐기면 될걸, 그 행복이 완전한지 캐묻는 강박증 환자가 된 거잖아.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잖아.


우리는 미진하지 않아. 성실하지 않아도 돼

여전히 불편하지? 이런 말. 다시 말할게. 우리가 강요받은(그리고 지금도 강요받는) 성실은 강요야,라고. 성실은 하나의 기준은 될 수 있지만, 유일한 기준은 아니야. 우리는 미진하지 않아.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우리 꺼야.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인생의 소유권을 훼손시켜선 안돼. '미진한 상태'로는 인생의 순간을 즐길 수 없어.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은 될 수 있는 한 삭제해버리는 게 좋아. 굳이 남들보다 나아지지 않아도 돼. 스스로 뿌듯해한다면 말이지.


쉽지 않아. 그래서 요즘은, 묵묵히 떠맡았던 몇 가지 일에 일부러 불성실하려고 노력 중이야. 어쩌면 이게 또 다른 강박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만족하고 있어. 즐거운 순간순간이 꽤 많아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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