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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Feb 23. 2020

자신을 무릅쓰는 일에 대하여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2013년)

"도와줘!  나의 아들인 그대, 나를 모래로부터 구해 줘!"

그녀(이집트의 대스핑크스)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다. 인간이 늘 그녀를 해방시켜 주지만 모래가 다시 돌아와 그녀의 숨통을 누른다. 사막이 그녀를 포위했고, 이제 그녀를 집어삼킬 것이다. 구원은 없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의 눈이 그처럼 겁에 질려 있는 것도, 그녀가 절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에세이 '지중해 기행' 中,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8년)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07년 한 남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15만 장의 필름

누구에게도 공개된 적 없던 사진을 남긴

미스터리한 천재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누구인가?"


(출처 : Daum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1476)


논문에 쓰기 위한 과거 사진자료가 필요했던 존 말루프(이 영화의 감독이자 화자)는 2007년, 미국 소도시의 경매에서 인화되지 않은 옛날 필름이 가득 든 상자를 산다. 필름 인화 후, 사진의 독특함과 작가의 천재성에 놀라 이름을 검색해보지만 나오지 않는다. 그는 여러 경매를 돌아다니며 이 사진작가의 필름을 15만 장을 모은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 올라온 작품들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러던 2009년 어느 날, 남자는 인터넷에서 짧은 부고를 접한다.

비비안 마이어.


그게 이 미스터리한 사진작가의 이름이며
이 다큐멘터리는 내내 그녀의 삶을 쫓아다닌다.



정식 사진작가로 데뷔한 적 없는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을 유모로 보내며 사진을 찍었다.

190cm에 가까운 큰 키에 이상한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를 썼던 그녀는, 돌보는 아이와 함께 또는 혼자 사진기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녀가 남긴 사진들은 60~70년대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 모습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사람들의 양해를 구하지 않은 채, 목에 걸린 카메라를 아래로 쳐다보는 척하며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찍었다.(그런 까닭에,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진 중에는 카메라 렌즈보다 30~40cm쯤 위에 있을 그녀의 얼굴을 당황스럽게 쳐다보는 사진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고용인이나 이웃들이 자신을 괴짜로 보건 말건 틈 나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나와 수많은 사진을 남겼다.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이 기록하고 싶은 방식대로 세상을 본 것이다.




중반 이후, 영화는 그녀의 은둔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입주 유모로 일하며 자신의 방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사람들을 잘 알지 못했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많지 않았다. 사진 외에도 그녀는 신문을 비롯한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고, 명한 살인사건 현장이나 장례식장을 찾아가 직접 탐문하고 조사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탔던 버스 티켓 같은 모든 흔적을 모아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영상(홈 비디오 같은), 모은 기록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2009년 조그만 아파트에서 외로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은둔적 기질을 가진 천재적 예술가에 대한 환상'은 이 다큐멘터리에 몰입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환상은 역설적으로,
영화가 내내 부수고자 하는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녀 주위 사람들은 인터뷰를 통해, 비비안 마이어가 은둔적인 모습을 보인 건,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사람에게서 배제되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은, 사막의 모래처럼 계속해서 그녀를 덮쳤을 것이다. 한 자리에 서서 다리부터 모래에 쌓여 묻히는 스핑크스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자기를 집어삼키려는 세상을 바라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같은 자리에 서서 조금씩 묻히는 걸 거부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무릅썼다.


자신, 이라는 힘든 일을 기꺼이 참고 견디며 세상으로 나갔다. 다행히, 그녀에겐 카메라가 있었다. 그녀에게 카메라는, 자신과 세계 사이의 경계선이었다. 수많은 사진을 찍는 동안 그녀는 선을 넘어다니며 당당하게 세상을 직시할 수 있었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그녀에겐,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를 놓지 않는 한, 세상은 두려움보다 신기함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가 결국 자신의 은둔성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보다 과감한 방식으로 세상을 기록한 그녀의 작업은,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 '조용한 삶'은 불완전하다기보다는, 불충분했을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명예욕, 과시욕이 었을 뿐이니까.



그녀는
사진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에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굳이 답을 바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수많은 필름을 인화도 하지 않고 필름통에 둔 채로 보관했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작업 자체에 만족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세상에 개입하기보다는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그녀에게 더 익숙한 방식이자 더 의미있는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혹여 바라는 게 있었더라도 그건, 세상에서 내놓는 뻔한 답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질문' 정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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