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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20. 2020

도시는 시간의 문법을 따른다

#청계천 을지로 산책


낡은 것을 치운 곳에서 도시가 들어 올려진다.

주위의 움직임을 무시하는 기계의 문법은 간결하다.

지정된 곳에 배치되고, 고정된 순간 일을 시작한다.

동작을 할 때는 눈치를 보지 않고, 동작을 멈출 때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선(線)을 거듭해 면(面)을 쌓는다.



반복한 면(面) 위에 사람들은 놓일 것이다.

사람들은 놓인 곳에 머무르지 않고, 머무른 곳을 반복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시야 안에 가두고, 각(角)의 외부를 동경한다.

말이 필요한 곳에선 말을 지어내고, 말이 없어도 되는 곳에선 말을 놓는다


그건, 사람의 문법이다.

선(線)을 그어대지만 면(面)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계가 딛고 선 도시는 인간의 문법으로 다진 곳이다.

그런 이유로 멀리서 보면 두 문법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처럼 반복을 참아낼 수 있고, 기계는 인간처럼 불안을 내보이기도 한다.

공기는 인간과 기계를 따지지 않고 불규칙하게 흐르므로,

매뉴얼은 성과를 담보하지 못한다.


결국, 도시는 시간의 문법을 따른다.


시간 속에서, 불규칙은 반복되어 규칙이 된다.

넘친 말들사라지고, 모자란 움직임은 채워진다.

의도치 않은 움직임은 제외되고, 시야를 벗어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계속되는 한, 어떻게든 선은 그어지고 면은 쌓인다.



아침, 도시를 가로지르며 시간을 딛는다.

오랜 세월을 견딘 선과 면을 관통한다.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 것들이 잊히고, 발 밑이 단단해진다.


이 계절이 끝나고 여름이 오면 출근길의 도시를 즐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아침마다 최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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