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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27. 2020

개 짖는 소리는 그치지 않고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

그래, 생로병사가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잠깐이지만 도통한 기분이 된다.


-에세이 '모독' 중, 박완서





개가 짖는다.


민폐일까 싶어, 얼른 개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마땅치 않다. 달리 개를 진정시킬 방법이 없다. 혹여나 개가 사람의 말을 이해한다고 해도, '구례 가는 길에 우연히 표지판을 보고 들어온 거야. 나무만 잠깐 보고 금방 갈 거야.'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 없다. 다행히 맹렬한 짖음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용인하기로 한다. 나무의 뒤쪽으로 돌아가자 소리를 잦아든다. 자존심은 강하되 현재에 충실한 개인가 보다.  



나무는 면사무소의 뒤쪽 공터에 있다. 은행나무가 자리한 곳이니 공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겠다. 나무는 늘 있던 나무의 자리에 있고 그 주위로 마을이 있다. 사람의 흔적은 나무 주위에 가득하다. 비닐하우스가 있고 폐목 무더기가 있고 전봇대가 있고 자동차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나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나무의 공식적인 영역, 그러니까 돌로 쌓은 두 단의 원형 축대보다 떨어진 곳에 더 큰 원을 그리고 있다. 그건 사람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면서 편하게 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거리일 것이다.


범접(接)의 거리를 두고 나무와 마을은 공존하고 있다.



나무의 인공물은 두 가지다.

옆으로 뻗은 가지를 지탱하는 지지대와, 밑동을 빙 두른 새끼.


하나는 나무의 필요에 의해, 하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더해진 것이다.

어쩌면 나무는 자신의 몸을 지지하는 무엇을 거부하고 싶을 수도 있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나무에 기원을 의탁하는 일을 심드렁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인공물 모두 과하지 않기에 일부러 반대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꿋꿋이 살아남는 나무에, 노력과 의미를 더하는 일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일이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줄기 몇 개가 합쳐져 하나의 나무를 이룬 듯하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 반대다.

대여섯 개의 줄기가 밑동에서부터 갈라져 있다. 일부 가지는 시멘트로 그 안을 보강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건사하고 있고, 각각의 가지는 스스로의 일가를 이루었다. 각자가 위치한 곳에서 작은 가지들이 방향을 잡고 뻗어나간다. 저녁 어스름에도 눈부신 녹색을 공유하면서.



갓 나온 잎이 세상을 입는다.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고 햇볕을 갈구하면서, 잎은 굵어질 것이다. 여름의 절정에는, 자기가 뚫고 나온 수피 따위는 잊고 자기만의 언어를 꿈꿀 수도 있다. 잎은 풍경 뒤에 숨지 않고 스스로 풍경이 될 것이다. 볕이 눈에 띄게 줄어들 어느 시점에서 잎은 노랗게 입을 닫겠지만, 그 침묵을 쌓아 새로운 시절에 임할 것이다. 녹색과 노란색을 지나온 잎의 세상에서, 겨울의 하얀색 다음은 다시 자신의 녹색이다.



그렇게 잎은 내내 자연이다.



마을에서 국도로 나오는 길, 좌회전을 해서 가던 방향으로 가면 되는데 멀리 나무 하나를 보고 직진을 한다. 조그만 교회 앞에 나무가 있다. 차에서 내리는 나를 교회 마당의 개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다행히 개는 짖지 않는다. 양 갈래의 가지는 불균형한 대칭으로 안정감을 준다.


여름이 오면 나무는 그늘을 내리고 바람을 가둘 것이다.

그때를 위해, 나무는 가지마다 녹색을 살찌우고 있다.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482호다.


*내비게이션에는 무정면사무소(전남 담양군 술지1길 5-12)를 치면 될 듯하다.

도로에서 면사무소로 꺾인 후에, 면사무소 마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길로 가면 바로 나무가 나온다. 개를 짖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여전히..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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