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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02. 2020

단정한, 인간의 정원

#서울 종로 종묘(宗廟)

꽃들이, 저 바위가

우리의 이름을 한 번씩, 천천히, 또박또박 부를 듯도 하여

조금 더 단정한 자세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시 '다시, 오래된 정원' 中 ,

장석남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2012년)





휴일의 오후, 성(城) 밖은 나른하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을 하지 않아도. 풍경 전체가 멈춘 느낌이다. 성벽을 천천히 돌아 입구로 간다. 종로구민 50% 할인을 받아서 들어간다. 500원을 아끼고 많이 좋아한다.



종묘의 입구에서부터 신로(神路)가 이어진다. 제식(式)에 대해 경건함이나, 제례(祭禮)에 대한 신봉이 없는 편이라 특별한 감흥은 없다. 하지만, 너른 공간에 요란하지 않낸 길은 스스로의 품격을 추고 있다. 안내표지판대로, 그 길은 굳이 밟지 않기로 한다.



종묘에는 쉴 곳이 귀하다.


 벤치는 아예 없고, 관광지에 흔히 있는 자판기나 커피 스탠드도 없다. 입구의 왼쪽 연못가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전부이다. 중간중간 어느 댓돌에 불편하게 앉을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문을 들어서서 한 바퀴 쉬지 않고 둘러봐야 하는 구조다. 쉬지 말고 걸으라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먼 시대의 엄숙함을 이런 식으로 지키는 것이 맞나 싶다. 그냥 걸어서 지나치기에 종묘의 정원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나무가 이어진다. 성벽 너머의 길은 많이 지나다녔는데 안은 처음이다. 벽 위로 솟은 자연의 존재감은 안에서 더 크다. 숲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나무가 즐비하다. 안에 들어가서 그늘에 쉬고 싶을 정도다. 방금 전까지 따가운 햇볕에 시달리던 눈이 금세 시원해진다. 자주, 멈추고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녹색이 천지다.



봄의 중간을 지나고 있는 꽃나무는, 춤추듯 하늘을 향하던 꽃과 땅의 녹색으로 숨어드는 꽃을 모두 지니고 있다. 꽃과 잎이 각자의 절정을 드러낸다. 공들여 제(祭)를 지내야 한다면 어쩌면 이곳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의 정원을 의도했겠으나 오히려 신이 생각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정원이다. 어쩌면 최대한의 자연을 사당의 바로 옆에 가져다 둠으로써 신과 왕의 몸을 낮추려는 게 아니었을까. 이 정원을 가꾼 이들은 신주를 가진 왕조와는 관계가 없는 이들이었다.  


정원의 밖에 서서 감탄한다.



청설모 두 마리가 바쁘다.


딱히 뭘 먹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한 자리에 있질 못하고 잔망스럽다. 청설모는 종종 멈추고 신경을 모으고 다시 움직인다. 그들에게 거슬리지 않으려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지만, 사진 찍기를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보는데 한 은행나무에서만 왔다 갔다 한다. 이 나무의 어느 면이 그들을 편하게 하는지는 알 턱은 없지만, 잠시 멈춘 그들에게선 편안함이 느껴진다.



정전(正殿)이다.



정전은 선왕과 왕비의 신주를 순위에 따라 모셨다는 곳이다. 건물은 열린 구조다. 정면의 건물 한 칸마다 신주가 있다고 한다. 신로는 중앙으로 향한다. 사진을 찍고 보니, 중앙으로 향한 그 선이 가차 없는 직선이 아니다. 돌의 모양에 따라 선은 미묘하게 중간중간 틀어져있고, 그 끝은 사당의 계단의 정확한 중간은 아니다. 옛날 사람들이 돌의 가공을 못해서 같지는 않지만 다른 이유는 찾지 못한다. 다만, 뭔가 각도와 거리, 너비 등이 완벽하게 틀에 맞춰 있을 법한 공간에 이런 투박함이 보란 듯이 있는 것이 즐겁다.



'거친 월대 바닥과 그 위로 육장한 지붕이 떠 있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라는 표지판 설명을 본다. 월대(月臺)는 건물 앞의 너른 마당을 뜻한다고 한다.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여름에 가까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돌들은 하나의 질감이다. 그 간결함으로 공간은 명징성을 획득한다.


그럼에도 '거친 외장재'를 택한 이유를 혼자 상상한다. 단 위의 신주가 있는 세상과, 지금의 세상을 분리하고 싶었을까. 안정된 내세와 무질서한 현재를 대비하고 싶었을까. 지금의 불완전함을 과장하여 선대의 신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을까.



정전의 주위에 나무가 즐비하다.

눈만 돌리면 된다. 지붕 너머로, 문 밖으로. 제례를 행하던 누군가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잠시 시선을 풀어놨을 것이다. 나무를 보며 속으로 몇 개의 음표나 몇 개의 얼굴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경건함을 내내 유지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왼쪽 문으로 나가 영녕전(永寧殿)으로 향한다.



향나무 아래에서 한 남자가 사진을 찍는다. 렌즈는 나무를 향하지 않고 풀밭을 향하고 있다. 그쪽 길로 오지 않았기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돌아갈 때도 그 길로 가지 않을 생각이다. 하루 정도는 풀밭의 '무엇'을 남자의 소유로 둬도 된다. 운이 좋으면 그가 찍은 사진을 어디선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녕전을 짓게 된 동기는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지은 것으로,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이다."라고,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설명돼 있다.   


설명을 위한 문장을 곡해해본다. "시간이 흐르면 왕도 사라진다."


다시, 담 밖의 정원으로 눈을 돌린다. 나무의 녹색이 형형하다.



돌아 나오는 길, 정원이 이어진다.

정원의 것들이 단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안에서 봄이 재재거린다.

꽃이 피고 벌레가 날고 개미가 기어 다닌다. 바람이 불고 꽃이 떨어지고 흙이 마른다.


곧 여름이 오면 정원은 더 바빠질 것이다.

어느 흐린 오후에, 그 시끄러움을 보러 다시 찾아올 것이다.  



*종묘에 대한 설명은, 교수신문에 실린 글과,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을 참조하면 된다.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2745

http://www.heritage.go.kr/heri/html/HtmlPage.do?pg=/palaces/palacesJmInfo.jsp&pageNo=2_5_1_0


*입장료는 1,000원이고, 수요일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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