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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07. 2020

세월이 엇박자로 비껴가도록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와 줄사철나무 군락

말년의 양식은 현재 속에 거주하지만 묘하게 현재에서 벗어나 있다. (중략)

말년의 양식은 죽음이 명확한 박자로 찾아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죽음은 굴절된 양태로, 아이러니로서 나타난다.


-말년의 양식中, 에드워드 사이드





도로가 낯이 익다. 내비게이션에 '진안 은수사'를 찍고 온 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확실해진다. 이곳은 몇 해 전 가족여행을 왔던 곳이다. 마이산이다.


주차장에서 은수사까지는 2km 정도 걸어야 한다고 뜬다. 식당가를 지나 산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기이한 탑으로 가득한 탑사(塔寺)가 나온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이곳이 목표였었다. 몇 년 전 아버지는 힘이 넘쳤었다. 그의 기억이 돌탑 어딘가에서 흘러나온다. 먼 마당에서, 세상을 떠난 그를 위해 잠시 기도를 한다.



표지판을 따라 탑사의 오른쪽 길로 올라간다. 완만한 길이지만 탑사가 풍기는 기이한 느낌이 없다. 마이산 하면 떠올리는 그곳을 벗어나 새로운 계(界)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은수사(銀水寺)의 입구에 들어서자 왼쪽과 정면으로는 마이산 특유의 뭉툭한 봉우리가 하나씩 솟아있고 오른쪽으로는 나무가 가득한 산이 있다. 이 모든 것의 사이에 작은 밭과 꽃나무들이 있다. 한눈에 들어온 풍경은 정돈돼 있다. 그래서 아래의 탑사나 더 아래의 주차장과의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눈 앞의 꽃들은 정돈된 느낌보다는 제멋대로 핀 느낌이다. 단순한 선을 가진 산 봉우리가 원경에서 받쳐줘서 더욱더 그렇다.


만개한 화려함 사이로 수수한 절이 보인다.



볕은 빠뜨린 곳 없이 내리쬐고 있다. 산그늘이 있는 오른쪽 길을 택한다.



찾아온 나무의 이름은 <청실배나무>이다. 나무는 하얀 봄 꽃을 온 가지에 달고 있다. 덕분에 멀리서 보면 눈송이가 덮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밝은 햇살 아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나무 전체가 쓱 지워질 것만 같다.


"청실배나무는 장밋과 산돌배나무의 변종이다. (...) 한국 재래종으로 매우 희소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 및 종 보존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 자신의 근원을 갖되 스스로 근원이 되진 못한 나무다. 단 하나만 존재하는 종(種)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본다. 어쩌면 나무는 그래서 이곳과 더 잘 어울리려 노력했을지 모른다. 조심스럽게 가지를 올리면서.



수령이 650년으로 추정된다는 이 나무는, 이 곳에서 가장 여려 보이는 꽃과 잎을 달고 있다.

그 시간이면 게을러질 법도 한데, 종종 일부러 계절을 몇 건너뛰거나 햇볕을 성가셔하며 잎을 우지 않을 법도 한데.


어쩌면 나무는 자신에게 찾아온 세월의 명확한 박자를, 일부러 인정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일정함 속에서 스스로 지쳐 늙어가는 걸 거부하기 위해.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현재가 낡아가는 걸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자신만의 엇박자를 만들며 나무는 세월을 굴절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밭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나무들보다 더 여려 보이는 잎과 꽃은 그런 아이러니에서 온 게 아닐까.



나무의 밑동에서 오르는 줄기는 네 개로 갈라졌다가 다시 두 개로 합쳐진다. 곧게 올라간 줄기의 아래에 서서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면 시원한 기분이 든다. 네 개의 줄기를 뺑 돌며 가지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감상한다.



새 한 마리가 가지를 오간다.


가지의 꼭대기에 집을 지은 새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기 전에도, 세월이 흐른 후에도 같은 풍경일 것이다. 새의 울음소리라고 해도 되고, 노랫소리라고 해도 될 만한 소리가 가지 사이를 떠다닌다. 새의 파동을 받은 꽃잎들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먼 돌산의 표면도 잠시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무의 반투명한 그늘이 온몸에 내린다. 구경을 멈추고 아무렇게나 앉는다.

봄 꽃과 봄 잎이 하늘을 가려준다. 덕분에, 안에 머무르던 생각이 굳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가을의 어느 날이면, 내가 앉은 이 자리로 열매가 떨어질 것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종(種)의 나무가 만든 열매는 어떤 빛깔일지 궁금해진다.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갈까 하다가 법당 앞으로 난 길을 택한다. 서울에 올라갈 때 퇴근시간에 걸릴 것 같아서 걸음을 빨리하는 찰나, 한 무더기의 녹색이 눈길을 잡는다. 그 풍성함 덕분에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멈춰 서서 쓰다듬듯 나무를 감상한다.


밑의 표지판을 보니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이라고 쓰여 있다. 천연기념물이다. 애초에 은수사 청실배나무를 검색할 때 같이 봤던 이름이다. 이곳에 있을 줄을 몰랐다. 은수사가 마이산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만경류로,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 바위나 나무를 기어오르는 습성이 있다. 꽃은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연한 홍색으로 익는다 (...) 은수사 경내 법고 전면을 비롯하여 수마이봉 부근에 20여 그루가 기암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다"


연한 녹색의 꽃과 연한 홍색의 열매를 맺는다는 이 나무의 녹색은 강렬하다. 필사적으로 바위에 뿌리를 내려 끌어온 모든 것을 잎에 모은 듯한 느낌이다. 마치 녹색으로 견고한 방비 벽을 쌓듯이.



바위 쪽으로 돌아가 안을 들여다본다.


검은 가지가 지천이다. 이 나무의 가지는 뻗어나가는 게 목표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바위 쪽으로 나무를 그러모으는 듯 보이기도 한다. 충동과 후회 사이를 반복하는 사람들처럼. 잎의 벗어남과 머무름은 가지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것이다.



요즘 모래 섞인 달빛을 쐬는 기분이 종종 들었다. 마음먹은 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고 서걱대면서 겨우 나이를 먹는 듯한 그런. 그 기분을 만회하려 나무 앞에 서서 녹색을 마음껏 받는다.


퇴근 시간대에 서울에 도착하면 그냥 천천히 운전하면 될 일이다.



땅을 넘보는 가지를 피해 내려간다.



올라갈 때는 스님과 둘이었는데, 지금은 한 분만 밭에 있다.

밭일을 하는 손길이 다급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 밭의 박자가 무질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밭의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빨아들이기 위한 빽빽한 간격을 무시하면서.

날아올 새들이 쉴 공간을 중간중간 마련해주면서.

작물이 흙을 떠나는 시점을 미묘하게 달리 하면서.


그렇게, 이곳에서 세월이 엇박자로 비껴가도록.



*청실배나무와 줄사철나무군락은 각각 천연기념물 386호와 380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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