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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n 15. 2020

몰래, 고민을 놓고 온다

#경북 경산 하양 무학로교회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눈물은 질문이다


저수지에 먼저 도착해 있는 적막

닫아놓았던 귀를 열어

풍경의 모퉁이, 서성이는 허공을 듣는다


-시 '물 위에 찍힌 새의 발자국은 누가 지울까' 中, 이은규 시집 「다정한 호칭」





저녁 7시 30분.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길어진 해가 다행이다.


모든 건물은 누군가가 머무는 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낮은 담 너머에 혹시 누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 들어간다. 문은 없다. 벽돌에 노을색이 더해지고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담 위를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먼저 도착해 있는 적막' 속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유난하다. 처음 몇 장을 찍고 멈춘다. 진입로에 한동안 서 있는다. 곧 해가 질 거라고 조급한 건 내 사정이다. 교회가 자리한 풍경은 나의 부산스러움과 무관하다. 이곳의 고요함에 익숙해지고 나서 다시 걸음을 뗀다. 교인이었다면 이 과정이 조금 더 수월했을까.



수직의 홈 하나가 교회 건물에 으레 솟아있는 대형 십자가를 대신하고 있다. 수직의 허공 하나로 사람과 하늘을 십자가로 이었다. 하늘을 기약하려는 사람과 사람을 바라보려는 하늘의 일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십자가를 의도한 선 외에도 건물을 이루는 모든 선이 직선이다. 단순한 선들은 눈에 쉽게 담긴다. 무쓸모한 위압감을 떠올리지 않은 채, 적갈색 벽돌 하나로만 만든 이 아름다운 교회를 넋 놓고 바라본다.



짙은 붉은색을 띤 보도를 따라 마당의 안쪽으로 간다. 한 그루의 나무 아래 한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나무 뒤 생활관 앞은 단정하게 정리돼 있다. 불이 켜져 있었기에 혹여나 있을 성경공부나 모임이 있겠다 싶다. 의자에 앉고 싶은 생각이 강렬했으나 혹여나 방해할까 싶어 더 들어가지 않고 마당의 구석에 머문다.  



교회와 나무, 의자가 각자(各自)를 내세우지 않고 한데 모여있다.


덕분에 교회 건물은 나무나 의자와 다를 것 없이 보인다. 허공을 공유한 세 풍경이 공간을 평화롭게 만든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게 한다기보다, 아무렇게나 두 팔을 늘어뜨리게 하는 곳이다. 저 배치를 위해 누군가가 수백 번 들여다봤을 설계도에도 순한 공기가 가득했을지 모른다.



예배당 입구의 옆에서 물이 바람에 흔들린다. 저곳에 들어가려는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흔들리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욕심을 정제하지 못하는 일상을 살며, 조그마한 고민에도 온몸을 내맡겨버리는 스스로를 비춰보지 않았을까.  



담벼락에 있던 고양이가 교회 뒤를 돌아 천천히 걸어 나온다. 고양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대신 물을 할짝인다. 고양이의 혀에서 시작한 동심원이 느리게 퍼지다 사라진다. 노을의 붉음도 곧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십자가가 외벽에 걸려있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벽 안으로 스며들 듯하다. 어쩌면 종교의 본질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고뇌와 열망을 스미듯 받아 안는 것, 그럼으로써 개인들 내면과 사회의 평화를 꾀하는 것.


제자리에서 서성대다가 몰래, 고민을 놓고 온다.

작은 교회의 작은 십자가 아래에.



저녁 8시, 골목 맞은편 집 앞에 부부가 수거해온 파지를 부린다. 돌아나가려다 야외 의자에 앉는다. 역시나 적갈색 벽돌로 낮게 쌓은 의자다. 야외에서 예배를 볼 때 사용할 단상 역시 벽돌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없는데도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릴 듯한 풍경이다.


단정함을 욕심내지 않아도 단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부의 모습과 설계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기사를 참조하면 된다. 나도 애초에 이 기사를 보고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28226475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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