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너무 다른 역할 Jun 18. 2020

당신의 신파

당신의 신파가 되어 이불을 덮는다


내 어둠을 쓸어내는 당신의 손에

거미줄이 가득이다


버튼을 눌러야 내가 켜져요

모드를 지정해야 눈길을 맞춰요

걱정 마요 저장되지 않으니까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서

등고선만 그려진 지도를 꺼낸다


검은 선이 그려낸 단면 아래

당신은 두 개의 지명을 적는다


첫 번째 이름과 두 번째 이름 사이에 있던

길들이 형체를 잃고 끊어진다


먼지 덮인 입으로 당신은 혼잣말을 한다


어쩌자고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발 밑에 선을 그어놨을까요

누가 저 아래까지 내려가 우리를 그려놨을까요


당신이 두 손을 맞잡지 않도록

짙은 입김을 불어넣는다


이불의 높이로 숨어들어가려

몸을 납작하게 편다


채색을 미룬 구름이 평면 안으로 들어온다

선들이 차례로 젖어 사라진다


옛 지명만 남은 하얀 지도 안에서

당신은 신파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의 예의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