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Aug 19. 2020

상온이라는 힘

충동적으로 사놓았던 토마토소스 캔이 눈에 띈다. 아무리 통조림이라도 오래 방치하는 건 재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밤 10시에 굳이 요리를 하기로 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에세이에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프랑스 요리가 있었지 싶어서 냉동실에 있는 재료를 스캔한다. 양파, 마늘, 피망 등등. 대충 볶다가 소스랑 물을 넣고 졸이면 되지 않을까. 빵도 몇 조각 있으니 찍어먹거나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일단 캔 먼저 딴다.

  

다진 마늘은 냉동할 때부터 얇게 펴서 네모난 조각들로 잘라놓아서 수월했다. 적당한 크기의 조각을 떼어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양파는 냉동실 플라스틱 통 안에 한 뭉텅이로 얼어있었다. 애초에 자르기 전에 물로 한번 씻어서 그런 듯하다. 작은 조각 사이에 남은 물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싱크대 위에 두고 얼마간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양파 조각 사이 얼어버린 공간이 상온에서 녹을 잠깐의 시간, 그거면 다였다. 



하지만 허기한테 졌다. 통을 이리저리 비틀고 손가락에 힘을 주며 용을 쓴다. 양파 뭉텅이는 꿈쩍하지 않는다. 시린 손가락에 입김을 불다가 결국 쇠젓가락을 틈에 찔러 넣고 여러 번 비틀었다. 냉기가 흐르는 커다란 조각 하나가 억지로 떼어진다.


잠시 고민한다. 양파 조각들이 제각각이 될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수분을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무식하게 그냥 기름에 넣고 볶아버릴 것인가. 이번에도 허기가 이겼다. 주먹만 한 양파 덩어리를 그대로 팬에 넣는다. 조금씩 달구자 양파의 냉기는 급격하게 사라진다.


하지만 조각 사이에 있던 물기가 그대로 흘러 기름과 섞여 흥건하다. 팬의 온도를 높이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기름에 양파가 볶이지 싶었는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온도가 쉽게 오르지 않는 팬에서 마늘과 양파는 흐물거리며 익는다. 억지로 익는다는 느낌이랄까. 미식가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잠시 이성을 되찾고, 상온이라는 힘에 맡겼으면 어땠을까.


꽝꽝 언 양파를 무리해서 떼지 않고, 상온에 툭 던져놓으면 알아서 녹았을 텐데.

그랬으면 생양파처럼은 아니어도 물기를 제거해서 기름에 제대로 볶을 수 있었을 텐데.



하루 종일 마스크 속에 갇혀있다 보니, 일상의 온도가 그리워진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 신경 쓰지 않으면서 골목을 돌아다니고 싶고, 사람이 많아 보이는 식당에 충동적으로 들어가서 추천받은 음식을 시켰으면 좋겠다. 시답잖은 고민에 깊은숨 내쉬면서 버스에 타고 싶고, 주말엔 마스크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눈에 띄는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 구석에 널브러지고도 싶다. 정돈되지 않은 평범한 풍경 속을 마음껏 돌아다녀야 지친 몸과 마음이 잠시 회복될 텐데.


그렇게, 도시라는 상온 속에서, 우리 본래의 온도를 찾아갈 수 있을 텐데...



어느 휴일, 친구와 낮술을 했다.


볕이 좋은 곳이었다. 냉채족발이 나오기 전에 소주가 놓였다. 차가운 병에 맺힌 물기를 보니 술을 마시기도 전에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등에 내리쬐는 볕도, 풍경도, 도로의 소음도 만족스러웠다. 별다른 말 없이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즐겼다. 이 풍경을 통째로 저장해서, 심란한 사무실이나 마스크에 지친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에 풀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병이 식기 전에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상온이라는 힘은 꽤 정직해서, 그대로 두면 자기 맘대로 소주를 미지근하게 만들 테니까. 평범한 풍경 안에서 모든 게 밋밋해지기를 매우 바라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차가운 소주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완전히 새로운 욕망이 아니더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