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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21. 2020

연애고민 피설득지수

대학 후배 한 명이, 얼마 전부터 나와의 술자리를 기록하는 중이다.

몇 달 전에 둘이 술을 마시다가 내가 한 말 때문이었다.


"우리가 70살까지 같이 마신다면, 너랑 나랑은 몇 번이나 술을 마실 수 있을까?"


둘 다 문과인 우리는 단순하게 계산했다.

평균적으로 두 달에 3번 정도니, 1년에 18번, 30년이면 540번이었다. 중간에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있을 테니 뚝 떼어서, 500번으로 하기로 했다. 결론을 내고 나서 둘이 동시에 "겨우?"라고 말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건강 관리를 잘하면 일흔 살 이후에도 꾸준히 마실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겨우' 500번이었다. 늘 흔한 술자리처럼 대수롭지 않았는데, 이렇게 따져보니 매 술자리가 '한정판' 같은 기분이 든다. .


여하튼, 그날 이후 후배는 나와 술을 마실 때마다 사진을 찍고 회차를 적기 시작했다. 취해서 만났을 때는 잊어버릴 만도 한데, 후배는 꾸준히 저장한다. 그 사소하지만 귀찮은 기록이 점점 쌓이는 사이에 우리가 어떤 '발전'을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사진 속의 우리는 내내 흔한 웃음을 짓고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엊그제, 일곱 번째인가 여덟 번째인 술자리도 유치했다. 우리는 솔리드의 '늦어버린 아침에 난 거리에서'라는 랩 구절을 열두 번쯤 따라 했고, 소주 세 병을 적당한 속도로 비웠다. 드라마틱한 전개나 꾸며낸 정열 따윈 없는 연애 고민(연애의 기준에 못 미치는 고민을 포함해서)이 이어졌는데, 서로가 명쾌한 솔루션을 바란 것은 아니어서 억지 결론은 없었다.


우리는 대학교 이후의 모든 연애사를 공유하는 사이였다.


누군가와 만날까 말까를 고민하며 들떠 있을 때나, 누군가와 싸우고 답답해할 때나,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서 쓸쓸할 때 모두 같이 술자리를 했었다.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후배와 나는 (지금 생각하면) 정확하지도 논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우리 둘은 각자의 경험과 기준에서 나온 생각을 조언의 형태로 말했다. 대개는 누가 봐도 즉흥적이고 얕은 고민으로 나온 조언들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꽤 자주 서로의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분명 둘의 성격은 물론 연애 스타일도 달랐기에, 서로에게 조언을 하는 게 이상했을 법도 한데 자연스럽게 수긍하곤 했다. 진지하게 후배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설득이 되곤 했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은) 실체가 없는 나의 분석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말하자면 둘 다,

연애 고민에 있어서 '피설득지수'가 높았다고나 할까.



이렇게 쉽게 설득을 당하는 이유는 아마 우리 자신에게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을 겪을 때마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연애를 하지 않을 때는 나만 생각하면 됐는데, 그래서 어떤 고민도 갈등도 필요 없었는데, 연애를 하면 달라진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나의 기준이 흔들리고, 내가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부족하다는 것을 무시로 알게 된다. 이건 몇 번의 연애를 거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늘 새롭게 만나고, 안타깝게도 늘 새롭게 헤어진다. 그 과정에서는 어떤 조언도 진또배기로 들린다. 곧 부러질 것 같은 젤리처럼 흔들리는 나의 연애가, 조언대로만 하면 괜찮아지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 둘의 높은 피설득지수는,

서로의 조언이 '조언의 형태를 띤 위안'이기에 가능했지 싶다.


 나 스스로가 시답잖고 유치하다고 느끼는 얘기도, 후배는 진지하게 들어주고 답을 고민한다. (가끔은 추측과 상상이 과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후배의 말을 듣고 상황에 맞는 말을 찾는다.


실제로 조언을 따라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경우도 왕왕 있기도 했다(물론 그 반대도 당연히...). 하지만 다음 날 술이 깼을 때, 조언이건 조언의 형태를 띤 위안이건 대부분 증발된다. 숙취의 형태로 남은 말들은 술자리 전보다 불분명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설득됐던 기억만으로 꽤 긴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이렇게 서로 간에 피설득지수가 높다는 건 행운이지 싶다.

 


70살까지 500번의 술자리를 갖는다는 목표(?)는 달성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둘 모두 결혼 전이어서 지금은 자유롭게 약속을 잡지만, 서로 가정을 꾸리면 이것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술자리가 아니어도 서로의 얘기를 공유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가 정말로 술이 땡기는데 물리적으로 힘들다면, 어디가 됐든 언제가 됐든,

멀리 있는 서로를 위해 한잔, 면 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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