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Jul 27. 2020

성지를 남기지 않기

#불면에 대항하기 위해



꿈에 시달리다가 깬 새벽,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성지(聖地)가 너무 많았구나.


귀찮아지는 게 두려워 언급조차 꺼리는 게 왜 이리 많은지,

존중하는 척해야 할 것들은 왜 그렇게 넘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기준을 왜 혼자서 부여잡고 있는지,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못살게 굴면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지......



나 혼자 조심스러워해도 경박한 인간들은 스스로 참지 못할 텐데

내가 기를 쓰고 막아도 드러날 억지는 결국 드러날 텐데


가뜩이나 좁아터진 내 머릿속에,

난 왜 쓸데없는 성지들을 만들고 있었을까.


마음 편히 들어가 드러누울 수도

은밀한 기대를 심을 수도 없는 그 불모지를,

왜 혼자 넓히고 있었을까.



이제부터 의식적으로,


발 디딜 곳 찾느라 땅만 보고 걷지 않기

해야 할 말이 생각났을 때 얼른 입밖에 내기

착한 표정을 짓고 싶은 순간에 억지로 얼굴 일그러뜨리기

나중에 생각하자고 보류하고 싶을 때 비합리적인 억지를 부리기

불필요한 성스러움을 적당한 상스러움으로 대체하기


그렇게 내 안에,

성지를 남기지 않기.


매거진의 이전글 나라는 영역이 희미해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