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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07. 2020

당신의 템포러리

오늘 달이 두 편 보였다

새로 온 달과 사라진 달

나는 새 달의 존재를 많이 믿지만

새 달은 사라진 달일 것이다. 


-시 '오늘 내게 보였다' 중, 울라브 하우게 시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내내 착하다가 가끔 화내는 사람과, 내내 화내다가 가끔 착한 사람. 둘 중에 누가 낫니?


후배한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후배는 '내내 착한?'이라고 말했다가 잠시 생각한 후에 정정했다. 


-계속 화내다가 가끔 착한 사람요. 

-왜?

-가끔 드러나는 게 본성이잖아요. 


후배는 '어쩌다가 화내는 사람은 평소에 그걸 참고 있는 것이고, 그 본성이 드러날 때 무섭다'라고 덧붙였다. 나도 그런 사람을 종종 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부정적인 모습'을 본 후 어떤 사람을 멀리 한 적도 있었다. 티 안 내려 노력하지만 왠지 조심하게 됐달까. 하지만 혼자 있을 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내 보인 착한 모습이 그 사람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누군가가 보이는 '평소와 다른 모습'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람과 오래 알고 지냈다면 더더욱. 하지만 인상적이라는 이유로 더 큰 가치를 둘 순 없다. 오히려 새로운 모습을 보고 내가 받은 충격 때문에, 그 사람의 익숙한 모습이 훼손되는 걸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한 팟캐스트에서 '수년간 사귄 남자 친구가 한 번 폭발한 걸 보고 헤어진 여자'의 사연을 다룬 적이 있다. 패널 대부분이 '얼른 그 남자를 잊고 새로운 인연을 찾으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한 명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마지막에 잘못한 건 맞지만 수년 동안 잘해준 것 역시 맞다. 364일 잘해주다가 하루 잘못한 걸로 왜 서로 행복했던 364일을 버려야 하는가. 새 출발을 해도 되지만, 마지막 갈등으로 인해, 두 사람이 행복했던 모든 기억을 버릴 필요는 없다." 


이 의견에 동감했다. 마음을 열었던 누군가와 보낸 하루하루의 기억은, 새로운 만남에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우리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금'을 홀대한다. 지금을 곧 흘러갈 임시적인 것으로 여긴다. 평소와 다른 특별한 하루를 꿈꾸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쌓아 그럴듯한 뭔가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결국 하루하루 겪는 임시적인 우리가 진짜 우리가 아닐까. 


내내 봐왔던 누군가의 모습이 그 사람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듯,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이 우리를 더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사는 하루는 임시적인 것이 아니다. 이 임시를 넘어선 나의 '본질'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도 되지만, 그것 때문에 별일 없는 나의 하루가 가치 없어진다면 그건 아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거창한 인생 따위 잠시 접어두고, 따분하고 진부하고 피상적인 '나의 템포러리'에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렇게 도무지 사라질 것 같지 않은 끈끈한 습기가 가득한 날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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