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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Sep 13. 2020

첫 고등어 무조림

#주방 편

요리의 종류를 정하는 건 쉬운 일이다.


냉장고에 있는 것 중 가장 눈에 밟히는 재료에 맞는 걸로 하면 된다.

오늘은 냉동실에 3개월째 있던 간고등어(고향 갔을 때 엄마가 챙겨준)와

냉장실에 3주째 방치된 무(마트에서 충동구매했던)를 쓰기로 한다.


고등어 무조림을 검색한다.


재료 리스트를 보고 없는 건 패스한다.

맛술과 물엿 같은 '중급반' 양념은 없는 주방이니까.

간장, 고추장, 마늘만 있으면 한국 음식은 대충 완성된다는 게 지론이니까.



일단 무를 꺼낸다.


포장 랩 안에서 어느 정도 썩었으려나 생각했는데, 벗기고 나니 양호하다.

참외 깎듯 껍질을 세로로 잘라내고 반토막 낸다.

반만 쓰고 반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예쁘게 썰 필요 없으니 젓가락질 편 정도로 대충 자른다.



도마에서 재료를 자를 때 가장 손맛이 좋은 게 무다.

당근은 너무 세고, 양파랑 호박은 너무 무르고, 고추는 질기다.


팬에 무를 깔고, 양파를 썬다. 작은 걸 골랐는데, 무와 양이 비슷해 보인다.

조금 남길까 하다가, '양파는 몸에 좋으니까' 그냥 다 넣는다.



검색한 대로 양념을 만든다.


간장 : 고춧가루 : 고추장 = 3: 2: 1  


이걸 입으로 외우면서 숟가락을 찾지만 그놈의 '큰 술'은 보이지 않는다.

밥숟가락으로 고추장을 떠 넣은 후 나머지는 눈대중으로 넣는다.

짜면 밥을 많이 먹고, 싱거우면 소금을 치면 되겠지


냉장고를 뒤져, 얼려놓은 다진 마늘과 생강을 한 조각씩 넣는다. 

맛술은 없으니 패스, 물엿은 없으니 설탕 조금. 끝.

어차피 시간이 많으니 정성 들여 섞는다. 뭉친 생강을 먹는 건 별로니까.



고등어를 꺼낸다. 생각보다 작았구나.

무와 양파의 양을 보니 더더욱 작다. 두 마리를 넣을까 하다가,

나의 보잘것없는 요리실력과, 내가 고등어 무조림을 처음 시도한다는 점을 스스로 주지한다.

한 마리면... 망쳐도 크게 억울할 것 없다.

무가 고등어보다 양이 많으니,

고등어 무조림보다는 무 고등어조림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손에 묻히기 싫어서, 간고등어를 봉지째 가위로 썬다.

팬에 두 동강 난 고등어를 던지고 다시 가위로 자른다.



만들어놓은 양념을 끼얹는다.

이 정도면 요리는 이미 끝난 셈이다.


물을 붓고 불을 켠다.


10초간 고민하다가, 조미료를 1/3 봉지 넣는다.

'원칙을 어겼다'거나, '거짓으로 입을 속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천연재료로 만든 조미료가 있는데,  

수많은 재료를 희생해서 한 끼의 육수를 끓이는 건 비합리적이니까.



레시피대로,

비린내를 우려해 완전히 끓을 때까지 뚜껑을 열지 않는다. 


한참 끓은 후에 고추를 가위로 썰어서 넣고 졸인다.

첨엔 물을 고등어 잠길 정도로 넣어서 너무 많이 넣었나 싶었는데, 계속 끓이다 보니 적당량이었다.



가끔 숟가락으로 무를 잘라보면서 무가 다 익었다 싶을 때까지 끓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하긴 라면이나 쉬운 찌개에만 익숙한 시간 감각이니 그럴 만도 하다.

 

불을 끄고 국물 맛을 본다.

살짝 짠데, 의외로 식당에서 먹던 고등어조림 맛이 난다.

스스로 대견해하며 그릇에 담는다.

파를 안 넣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그래 봤자 양념 하난데 뭘. 그거 없어도 만족스러운데 뭘.



그놈의 코로나 덕분에,

이 불완전한 주방에서 시도하는 요리들이 늘어난다. 


이런 걸 엄마한테 전화로 자랑하면 맞장구를 쳐주시기는 하는데,

생각해보면 수십 년 요리를 해왔던 엄마는 우습겠지 싶다.


없는 재료도 많고, 레시피를 100% 충실히 따르지도 않지만, 의외로 맛이 나는 게 신기하다.

이럴 땐, 무디디 무딘 입맛에 감사할 뿐이다.


그나저나,

남은 무로는 뭘 시도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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