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등갈비 김치찜

by 너무 다른 역할

1인 가구의 냉장고는 늘 애매하다.


일단, 어쩌다 요리를 해 먹기에, 재료가 들쭉날쭉하다.

있어야 할 재료가 없을 때가 많고,

뭐든 1인분씩은 팔지 않기에 의도치 않게 남겨진 재료가 생긴다.


냉동실은 어렵사리 비워놓으면 금세 차 버린다.

배달 음식이 남아도 냉동실 행이고,

고향집에서 반찬이나 고기를 가져와도 얼마 후엔 냉동실로 간다.

거기에, 찌개용으로 죄다 잘라놓은 채소와 다진 마늘 등이 든 통도 여럿이다.


토요일 아침, 냉동실을 열어보고 하나를 픽, 한다.

오늘은 이놈으로 결판을 내야지 하는 심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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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팩에 든 등갈비를 꺼내 찬물에 담근다.

내가 본 레시피에 1~2시간이라고 했으니, 11시에 꺼내기로 한다.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면서 중간중간 물을 갈아준다.

언 고기여서 그런지 핏물이라기보다는 뿌연 물이 나왔다.


등갈비는 '당연히' 엄마가 줬다.

엄마를 엄마처럼 따르는 친구가 얼마 전에 보내준 고기였다.

오빠들(나와 형)도 먹으라고 넉넉하게 종류별로 보내준 고기 중에서,

엄마는 등갈비와 삼겹살을 나에게 들려 보냈다.


물을 따라버리고, 뼈를 따라 갈비를 하나씩 자른 후에

된장을 넣고 끓인다.

어디서 들은풍월로,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통후추나 커피를 넣을까 하다 만다.

왠지 이따가 김치가 다 해결해 줄 것 같은 믿음이 있어서.

대신, 얼마 전에 사서 넉넉히 남아있는 통마늘을 열 개쯤 넣는다.


고기가 끓는 동안 딱히 할 게 없어서, 희끄무레하게 떠오른 것들을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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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 2T : 국간장 1T : 다진 마늘 1T : 새우젓 0.5T

라는 레시피를 보고 따라 만든다.


새우젓은 없으니까 패스하고,

고춧가루랑 마늘은 좋아하니까 조금 더 넣고 섞는다.

옆에 올리고당 통이 보이길래 한 스푼 넣는다.


조미료를 넣을까 하다 관둔다.

다시 한번, 김치가 해결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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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갈비를 충분히 끓인 뒤 체에 받혀 물을 따라 버린다.

팬에 김치를 깔고 고기와 마늘을 얹고,

밥 안칠 때 미리 받아둔 쌀뜨물을 붓는다.

양은 눈짐작이다.


끓은 후에 양념을 부을까 하다가 그냥 붓고 불을 켠다.

산 지 몇 주 돼서 비들 비들 해진 고추를 죄다 가위로 잘라 넣는다.


끓기 시작할 즈음, 때마침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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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그때 준 등갈비로 김치찜 하고 있어요

묵은지 있었어?

아니 그냥 김치 익은 거 있어요.

그래 뭐.


대개 밖에서 파는 김치찜 앞에는 '묵은지'라는 수식어가 있었던 듯하다.

푹 익은 김치와의 맛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적당히 익은 김치라고 맛이 없진 않을 것이다.


신맛이 좀 덜한 정도가 아닐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식초를 넣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금방 포기한다.

생각해보니 이 집엔 식초가 없다.


엄마가 나중에 이모한테 받은 김장김치를 준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는다.

그 사이, 김치찜은 성실하게 끓고 있다.

국물을 살짝 맛보니, 다행히 간이 맞다.

가위로 고기를 잘라먹어본다. 고기도 다 익었다.


하지만 더 끓인다.

레시피에, '뼈와 고기가 잘 분리되도록' 하려면,

'충분히 끓여서 손님상에 내놓아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손님 하나 없는 밥상이지만,

나 역시 '뼈와 고기가 잘 발라지는' 걸 선호하기에

되도록 충분히 끓인다.

사실, 이거 외에 딱히 할 일이 없는 토요일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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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2년간 이 조그만 주방에서 이것저것 시도한 덕에,

요리를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은 덜해졌다.

일단 시작한다. 완성된 요리가 맛이 있다 없다, 와는 별개로.


나한테 집에서 하는 요리라는 건,

엄청난 준비나 맛에 대한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그날 먹고 싶어서 사 왔거나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겨우' 음식의 형태만 갖추면 된다.


그건 이 집의 주방이 낡고 좁기 때문이라거나,

내가 미식을 즐기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부담'에 관한 문제이다.

집밥은 조금 짤 수도 있고 달 수도 있고,

맛이 명쾌하지 못하고 텁텁하거나 반대로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준 저 기준 다 맞춰가면서 엄격할 필요가 없다.

집밥은 가장 편한 장소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먹는 밥이기에,

만들 때도 아무런 부담이 없어야 한다.

그게 나처럼 혼자 먹는 밥이건 혹은 같이 사는 누군가와 먹는 밥이건 간에 말이다.


말하자면,


겨우, 집밥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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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든 등갈비 김치찜은 예상외로 '통상적인 맛'이다.

흡족하게 먹으면서, 엄마한테 등갈비를 보내준 동생한테

김치찜 사진과 감사 문자를 보낸다.


그렇게 한 끼를 두고 오랜만에 말이 오가면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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