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를 구하겠습니다만

#음주 후의 새벽

by 너무 다른 역할

"나빠지지 않겠다고 해. 어디서든 그러자고."

Y가 점퍼 지퍼를 채우고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소설 '아이리시 고양이' 中, 김금희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만취 후 새벽의 집안은, 괴적하다.


(괴괴하고 적적하다, 라는 의미의 괴적이란 말이 있겠지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괴적하다(怪寂하다)"는 "괴이하고 적적하다"는 뜻이다.

새벽의 집안 모습을 설명하는 데에는 더 적확한 듯)


이 괴이하게 적적한, 혹은 적적해서 괴이한 어둠 속에서

지난밤 술자리를 복기한다.

대개의 소회는 '적당히 먹을걸'에서 끝나지만,

종종 '어떻게 집에 왔더라'까지 가기도 한다.


뭐가 됐건, 정신은 맑지 않고,

술에 시달린 몸은 일부러 천천히 알코올을 분해하면서

이 안온한 휴식의 시간을 길게 늘이려는 듯보인다.


그럴 땐, 양해를 구했겠습니다만, 이라고 말하고 다시 쓰러지고 싶어 진다.

물론, 혼자 사는 집에 양해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지만......



그러나 다시 눈을 감고 누우면 아침까지 계속될 것들이 떠오른다.


집어먹은 안주들이 입안 가득 남긴 텁텁함,

점막 전체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알코올 냄새,

갑자기 왜 쑤시는지 모를 부위에서 전해오는 지속적인 불쾌함.


거기에,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간밤에 내뱉은 경솔한 말의 독성이

내 얼굴 어딘가에 남아있는 듯한 찝찝함,

괜한 이유를 만들어 또 취기에 의존해버렸구나 하는 후회까지.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 내가 집에 와서 자고 있으면서도

집에 온전히 도착하지 못한 듯하다.

이런 상태로는 내일 아침이 돼도,

전날 비에 젖은 축축한 운동화를 다시 신고 나가는 그런 기분이 들 것이다.



결국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시간을 들여 양치를 하고 빠진 곳 없이 샤워를 한다.

이 모든 과정 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 화장실 불은 켜지 않을 때가 많다.


새벽 3~4시, 창밖 가로등의 빛이 조금 들어오는 컴컴한 화장실에서

난 말하자면, 제대로 끝내지 못한 하루를 마저 끝내는 셈이다.


무탈한 나날이 이어지더라도,

어제를 복사한 듯한 오늘이 오늘의 연장선 같은 내일로 이어지더라도,

하루하루에 마침표를 찍는 건 필요하다.


취한 몸과 마음을 적당히 뭉개면서,

하루를 이어 붙이듯 흐리멍덩한 며칠을 보내면

몸도 마음도 반죽처럼 길게 늘어져 탄력을 잃는 듯하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양해 같은 건 구하지 않는,

번거로운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아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이 평온한 일상이 푸석푸석 무미건조한 날들이 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나 요즘처럼 복붙 하듯 집-사무실을 반복하는 시기에는 더더욱.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