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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사선택

#악의

by 너무 다른 역할

환멸이라고 말해 버리면 너무 만만해진다

그렇게 쉽게 말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떠오르는 얼굴들을

굳이 귀를 잡아당기고 머리채 잡아

하나 하나 끄집어낸다


넌 나한테 왜 그랬니

나한테 굳이 그 말을 왜 했니

내가 무슨 표정을 짓기를 바랐니


입이 봉인된 머리들이 하나같이 침을 흘린다


두려움이라고 말해 버리면

근육이 온통 물렁물렁해진다


조심스러워 느려진 걸음으로 사람들 뒤를 받는다

그들의 얘기를 엿 듣고 기록 한다


잡아채서 품에 두기보다는

사라지는 편이 나을 말들


내가 치워지길 바라는 눈빛들


공기 중에 교만함이 가득하다

핀셋으로 하나 하나 집어내

딱딱한 악의를 벗기고 맑은 소주에 담근다


시간에게 치여 낡아버린 새벽

막힌 골목으로 얼굴 없는 사람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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