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써야 마땅한 시여야 하는데
지워야 마땅한 단어가 한가득
밖에는 숨 막히는 시들이 넘치는데
공백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카페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되잖아요
너무 멀리까지 정신을 외출시키지 않아도 되잖아요
은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안 되는 게 있어도 되잖아요
되잖은 것도 적을 수 있잖아요
쓰는 게 모두 시가 되진 않아도
시는 써야만 하는 거니까요
손가락이 제멋대로의 방향을 찾아가기 전까지
써야 마땅하니까요
불면과 각성을 한 문단에 적어내립니다
고집을 버린 하얀 화면이 산만해집니다
공기가 먼지를 벗습니다
문장들이 입을 벌리고 춤을 춥니다
시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