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를 씁니다

by 너무 다른 역할

시를 씁니다

써야 마땅한 시여야 하는데

지워야 마땅한 단어가 한가득

밖에는 숨 막히는 시들이 넘치는데

공백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카페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되잖아요

너무 멀리까지 정신을 외출시키지 않아도 되잖아요

은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안 되는 게 있어도 되잖아요

되잖은 것도 적을 수 있잖아요


쓰는 게 모두 시가 되진 않아도

시는 써야만 하는 거니까요

손가락이 제멋대로의 방향을 찾아가기 전까지

써야 마땅하니까요


불면과 각성을 한 문단에 적어내립니다

고집을 버린 하얀 화면이 산만해집니다

공기가 먼지를 벗습니다

문장들이 입을 벌리고 춤을 춥니다

시를 씁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