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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an 11. 2021

집술의 미덕

빵은 들어 있던 봉지를 찢어서 바닥에 펼치고 그 위에 올리면 된다.

연어와 살라미 접시도 주변 바닥에 둔다. 바닥이 테이블이다.

실컷 야만적이고, 완전 무신경하고, 방약무인이다.

하얀 테이블클로스가 뭐 어쨌다고, 멍청이.


-'방바닥에 레드와인' 中, 구스미 마사유키 에세이집 「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




일요일 이른 저녁, 집술을 시작한다.


편의점에서 사 온 와인 한 병을 따고, 애정하는 맥주잔을 꺼낸다.

왠지 혼자 먹는 와인엔 와인잔보단 투박한 유리 맥주잔이 어울린다.

얼음을 넣을까 물을 탈까 하다가 그냥 마시기로 한다.


파자마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의자를 마주하고 앉아

일단 안주 없이 시작한다. 하지만 곧 어딘가에서 뭔가를 하나하나 꺼내 오겠지.

몇 잔을 비우고 집안을 서성댄다. 주종을 바꿔볼까나.


집 안에 술이 떨어지면 왠지 허전하다.

('왠지 불안하다'였으면, 알코올 중독증을 의심하겠으나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술들을 채워 넣는다.

특별한 취향이나 엄격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맥주, 와인, 소주, 양주, 막걸리 등등 주종별로 한두 개 정도면 된다.

많이 사면 왠지 그쪽으로 손이 가지 않고,

아예 없으면 갑자기 그 술이 먹고 싶은 날 혼자 서운해지니까.



집술엔 확실한 매력이 있다.


오늘은 꼭 뭘 먹어야 한다, 식의 결연함이 제로인 상황에서

집 안을 슬렁슬렁 걸어 다니다가, 기분 내킬 때 기분 내키는 주종을 선택한다.


술집에서처럼 모든 술이 냉장고에 있지 않지만 상관없다.

상온의 술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태세를 취하고 있는 술과 다른 매력이 있다.

냉장고 안의 술들이 어딘가 고집이 세 보이고 별안간의 침투를 벼르는 듯 보인다면,

반대로 어느 계절에건 상온에 있던 술은 편하게 늘어져 있다. 능숙하게 늘어져 있달까.

누군가에게 취기의 세계를 펼쳐준다는 술 본연의 목적은 잊지 안되, 그 태도는 느직하다.

과한 말을 내뱉을 필요도, 분위기를 억지로 맞출 필요도 없다는 투로.



상온의 술이건 냉장고 안의 술이건,

집에서 마시는 술은 공간을 연하게 해 준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날카로운 말들은 뭉툭해지고

무언가에 대한 조바심은 흐물거리는 형체로 변한다.


이건 단순히 취기의 도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밖에서 가져온 농도 짙은 취기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밖에서의 왁자함이 묻어 있는 취기,

그러니까 적당히 먹건 진탕 먹건 밖에서 술을 먹고 들어왔을 때의 취기는,

집에 들어선 순간 '어르고 달래야 할 무엇'이 된다.

적당히 토닥토닥해서 이불에 누여야 취기가 일으킨 흥분이 사라질 것 같은 기분.



집에서의 취기는 공간 전체에 서서히 퍼진다.


처음에는 책상 근처로, 그다음에는 거실로,

종래에는 욕실과 부엌 구석구석까지 퍼진다.

술의 기운이 한 겹 드리워진 집 안은 알코올 냄새를 더한다기보다,

본래 가지고 있는 산만한 일상의 냄새를 잃는 느낌이다.


술기운은 집을 흔들지 않고 다정하게 흡수한다.

그 안의 사람은 앉아있건 누워있건 천천히 활보하건,

부드러워진 집의 질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다른 술을 섞지 않기로 한다.

와인을 1/3병을 채 안 마셨는데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쌓여가는 빈 병으로 기분을 내거나,

취기로 취기를 덮어야 술자리가 마무리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어떻게 술자리를 끝내더라도 술자리는 다시 이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노동하듯 열심히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래서 적당한 정도의 취기만 이어지더라도 꽤 만족스러운 집술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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