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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20. 2021

이야기가 내린다

골목에 비가 찬다


넘친 빗소리가 틈으로 스며들고서야 창을 연다

창을 열고서야 문을 연다

공기가 얇게 요동하며 온 몸을 뒤덮는다


비가 온다는 건 하나의 구술이다


하늘색이 다른 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차곡차곡 머금던 구름이 


더이상 자신의 회색을 감당하기 싫을 때

하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렇게 

비는 스스로 한 종류의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봄의 비는 숨기는 기색을 갖지 않는다


다른 방향의 깃을 가진 새들이 

습기 사이로 울음을 끼워넣는다


그건 새가 자신의 생애를 다듬는 방법이다 

이런 날 새는 목을 재우고 부리로 운다


봄의 비가 정색을 한다


뒤덮인 풍경에

먼 곳에서 온 이야기의 배후가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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