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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22. 2022

부푼 뒤에 흘러내려도

#터키여행 B컷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아빠?"

"그냥 다."

아버지는 허어 웃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온통 분식회계로 사는 판이라서."

"분식회계?"

"실제보다 회계를 부풀리는 뭐, 그런 게 있어. 분식회계로 계속 운영하면 마지막엔 망하게 돼 있거든."


-소설 「소금」中, 박범신





압화(押花)처럼 정직하게 사는 건 현명한 선택일까?


한쪽으로 넘어질 걸 예비해 길의 한가운데만 고집하는 게,

혹시 이기적인 건 아닐까?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남은 것들만 헤아리며 산다.

하지만 정작 그가 보고 있는 건, 자기 안에 비어있는 자리이다.


담백하다고 생각한 자기의 일상은

앞과 뒤를 헷갈린 채, 둘러댈 수 없는 변명이 된다.



트럭의 파란색은 하늘의 파란색과 섞이려 하지 않는다.

트럭은 고집스럽게 하늘의 아래를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버스와 트럭의 속도의 차이가, 트럭이 내보일 수 있는 최대의 출력이다.

내가 앉아 있는 버스에서 본 트럭은, 지루할 만큼 느리다.

기를 써서 앞서간 트럭의 뒤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가끔 부풀어도 된다.

자신을 부풀려 누군가에게 선보여도 되고, 누군가를 부풀려 자신 안에 담아도 된다.

우리는 제약 없이 누군가를 시샘해도 되고, 무언가를 욕망해도 된다.


종종 이탈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 손이 있고, 두 손은 어디든 붙잡을 수 있다.



연결이 언제든 가능하다면, 반대로 디스커넥트도 언제든 가능하다.

부푼 자신이 가 닿은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끊어내면 그뿐이다.


종속(從屬)의 여부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종속은 자주적이다.



자기 안의 것을 헤아리는 사람에게 자신만의 사원(寺院)이 가능하다면,  

남은 것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에게도 가능하다.


사원의 안에서 기도할 것인지,

사원의 밖에서 감상할 것인지의 차이일 뿐이다.



다만, 자신의 윤곽선은 언제나 간결해야 한다.

도무지 허물어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드러나지 않은 것보다 조잡한 것들은 금세 낡고,

세월의 속도보다 빠르게 낡아가는 것들은 금세 이탈한다.



부푼 뒤에는, 흘러내려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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