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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n 13. 2018

모조된 그녀가 날아왔다

복제 그림이 주는 쾌락

호텔 방에 틀어박혀서 단짝 친구에게 몇 장이고 계속해서 편지를 써대는 게

름대로 이 도시를 알아가는 방식이란 말이지.


-소설 '공격', 아멜리 노통브






살짝 자괴감에 빠졌다.

초중고, 대학교 4년 과정까지 성실하게 이수하고, 토익점수도 딸 만큼 땄었고, 해외에서 촬영할 때도 얼추 무리가 없던 나였다. 하지만 그림 주문 페이지의 material 선택 란 앞에서, 난 에일리언을 마주한 시골 촌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캔버스 프린트는 뭐고 맷 페이퍼 프린트는 무엇이란 말인가. 업무 시간에 몰래, 미술 사이트, 그림 판매 사이트를 구글링 했지만, 명쾌하지 않았다. 결국, "비싼 게 좋은 거겠지" 같은 무식하기 그지없는 잣대로 맨 위에 있는 걸 선택했고, 결과물은 러시아에서 2주 뒤에 날아왔다.


세상에. 미술 문외한인 나에게,
캔버스 프린트는 실물과 진배없었다.

원통에서 돌돌 말린 그림을 꺼내서 책상에 펴자, 6년 전에 한 번 보고 홀딱 반해버린 그림이 눈 앞에 되살아났다. 캔버스 프린트는, 캔버스 천에 인쇄한 거라는 걸 그제야 실체적으로 알았고, 다른 프린트 방식이 뭐건 간에 제대로 택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자화상 (At the Dressing Table. Self-Portrait, 1909)

by 세레브리야코바 즈나이다 (Serebryakova Zinaida, 1884 -1967 )


-재질 : 캔버스 프린트 & 캔버스 액자

-구입 시기 :  2018.4

-구입처 : htps://agniart.ru (프린트), 충무로 가온 (액자)

-제원 : 가로 67cm X 세로 75cm X 두께 3cm




원본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미술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는 줄 알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가서 직접 보는 것과, 책이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것. 첫 번째 방법은 심쿵한 경험이지만 물리적인 한계가 있고, 두 번째 방법은 접근성이 용이하지만 도무지 감흥이 오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실 사이즈의 프린트를 주문해 액자까지 만들어서 벽에 걸고 보니, 이건 두 가지 방법의 맹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아무리 노려봐도 원본이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는 있으나, 복제가 원본을 낳는 이 시대에 그건 크게 의미는 없어 보인다.


실물이 주는 소유감은 매우 훌륭하다.

원본처럼 노심초사 관리하지 않아도 돼서 심적으로 편안하다. 그래서 슬쩍슬쩍 표면을 손으로 쓸기도 한다. 거기에, 종이나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볼 때의 사이즈의 한계 또한 없다. 색감 부분에서 원본과 매우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미세한 색감을 구분할 만큼의 안목이 없어서 다행이다.  



과연 이게 모조일까 복제일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둘 다 맞는 거 같다.

복제는 진품을 똑같이 찍어내는 거니까 그 의미에서 프린트된 그림은 복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프린트하는 작업이 아무리 정교해도 원본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진품을 흉내 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이 프린트는 모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이 내 집에 걸린 과정은 매우 산업적이다. 사이트에서 주문할 때 본 정보에 따르면, 이 회사는 원본 그림이 걸려있는 모스크바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로열티를 주고 있다. (당연히 이 로열티는 프린트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지불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전문 사진가가 그림들을 촬영하고 색을 보정해 원본 파일을 만들 것이고, 사이트 및 매장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그 파일을 이용해서 제작 가능한 상품 리스트를 올린다. 내가 프린트의 재질과 사이즈를 지정하고 비자 카드를 통해 결제하면, 공장에서 그림을 프린트하고, 국제운송회사를 통해 집 앞까지 배달된다. 배달된 그림을 액자 제작업체에 의뢰해서 앞뒤 나무판과 테두리에 나무 각목을 덧대고 벽걸이용 끈까지 달면 작업이 끝난다. 하지만,


그림을 벽에 건 순간부터, 생산과정을 잊었다.
공산품으로 대우하고 싶지 않아서다.

지극히 산업적인 과정을 거쳤더라도, 원본의 아우라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작가가 그린 25살의 자화상이 복제된 프린트 안에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풍성한 갈색 머리를 빗고 있는 25살의 그녀는 절제될 수 없는 자신감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시때때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눈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1909년 전 러시아 어느 집에서 있었던 한 장면을, 109년이 지난 지금 서울의 구석에 들이고는 혼자 뿌듯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 깨닫고 조금 우습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내 공간에 틀어박혀서, 스스로에게 편지 같은 쇼핑을 선사하면서, 내 내름대로 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6년 전, 러시아 여행 때,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Museum of original Tretyakov Gallery)에서 봤던 그림이다. 하도 예뻐서 한참을 보고 또 보고 했다.


* 친구가 미술관에서 찍어서 보내준 사진을 보니, 미술관에 걸린 영어 제목은  <at toilet self-portrait>다.


* 이 작가의 그림 중에, 철도 엔지니어였던 남편의 초상을 그린 그림도 매우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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