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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 May 10. 2024

그림을 보고, 듣고, 그린다는 것

"혹시 그림 배운 적 있니?"

미술 선생님의 한마디는 오래도록 마음의 자양분으로 남아 있었다. 그때 겨우 열다섯이었고, 연필로 사과 그림을 흉내 냈던 게 전부였다. 아주 사소한 칭찬이었는데 그날의 온도와 옆에 있던 친구들의 반응, 그리고 유심히 내 그림을 바라봐주던 선생님의 표정이 가끔 떠올랐다.


미술 시간 외에 내가 그림에 다가간 적은 없었고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연남동 좁은 골목 어디쯤엔가 작은 책방을 들여다보는데 누군가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마음을 이끈다. 어느 그림책 작가의 원화 전시를 하는 장면이다. 홀린 듯 그 안으로 들어가 그분의 책과 함께 그림을 집으로 데려왔다. 아마도 그즈음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림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림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우아함'을 느끼는 순간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이라도 미술관에 발을 내딛고 오면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가슴 한편이 살짝 우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다 보니 궁금해지고 그러다가 화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고, 그것을 풀어낸 장면을 듣고 있는 내가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취한 지 10여 년이 흐르고,

욕심이 생겨났다.


'저 아름다운 그림을 내가 그릴 수 있을까?'

작은 꿈틀거림이었다. 미세하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배우가 어느 날 토크쇼에 나타나 운명 같은 러브스토리를 들려주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화가인 아내에게 어떻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지 물었더니,


" 우린 둘 다 어렸을 때 붓을 잡고 있었어.

다만 너는 그때 이후로 붓을 놓았을 뿐이고

나는 아직 그걸 놓지 않았을 뿐이야."


다시 작품으로 돌아온 배우에 대한 궁금증 못지않게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몹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조용한 울림을 주었고, 이제라도 시작해도 된다는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사무실 근처 공방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림 곁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는 수채화 그림을 배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2시간의 수업 시간에 절반 이상이 선을 긋는 연습이었고 붓글씨가 우선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20분 남짓 수채화 물감을 담아내는 시간이 훨씬 기다려졌다.


수채화를 알고 싶어 화실을 찾아다녔고 가까운 곳에 등록하고 나니, 매주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기쁨도 잠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부서를 옮기면서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고 다음을 기약하며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나면 언제든 기회가 올 줄 알았는데 예정에 없던 퇴사를 해버리자, 갈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마음의 꿈틀거림은 신호를 주었다.


작년 겨울 다시 그림을 배우러 가기 시작했다. 일을 그만두어 시간이 여유롭다며 기초부터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첫 해바라기를 완성하고, 꽃병에 담긴 장미를 그려내고, 초원에 펼쳐진 하얀 데이지꽃이 흐드러지고, 푸르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유채꽃밭을 담아냈다.


그림은 나에게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누구와 비교되지 않고 나만의 크기에 맞는 캔버스 위에 내가 고른 물감으로 한 송이씩 꽃을 올렸다.

미술관에서 유명화가 그림을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내가 직접 그려낸다는 것은 일상을 예술로 변화시켰다.

그토록 오래전부터 마음이 속삭였던 일을 한다는 것은 평안이 되었고

오로지 나를 위한 위안으로 여겨졌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일렁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화실에서의 '나'는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으며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그림 그리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만족스러웠다.

그림 실력에 대한 칭찬보다 내가 어떤 색을 주로 사용하고 무엇을 그릴 때 신나서 몰입하는지 나도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해 줄 때가 기분이 좋았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은 순간

'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이 단순해지는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나의 오늘이 뿌듯함으로 벅차오른다.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더는 모른 척하지 않고 반겨주었다.

오늘의 할 일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시간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를 주었고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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