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박웅현 / 북하우스

by 정작가

<여덟 단어>는 강연 모음집이다.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니 다소 현장감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지만 편하게 읽히는 걸 보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강연이나 텍스트로서도 빈궁한 구석이 없으니 말이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부제가 이 책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이 책에는 인생의 수많은 덕목 중에서 작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덟 단어가 있다. 한 단어는 그 자체로서 강연의 주제이자 챕터가 된다. 여덟 단어가 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첫 번째 단어는 자존(自尊)이다. 자존감이란 단어를 풀어보자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무엇보다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훼손되었을 때 인간은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실존의 가치로서도 자존감은 우리를 지배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런 자존감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당신 안의 별을 찾으셨나요?’ 자존을 다루는 첫 장에 나오는 말이다. 내 안의 별을 찾기는커녕 별의 존재조차도 인정하기를 꺼리는 것이 현실 아닐까? 차라리 뒤에 나오는 현재, 소통, 인생에 대해 논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존을 책의 첫머리에 배치한 이유는 그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이유가 아닐까.


자존을 강조하는 의미로 저자는 두 가지의 문장을 끌어들인다. 메멘토 모리와 아모르 파티다. 각각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자존감은 나의 기준점을 찾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남이 이룩해 놓은, 남이 규정한 틀에 복속되는 것이 아니라 내 위주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뜻을 이뤄가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 말한 주체력 또한 그런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 중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개념어는 본질(本質)이란 단어다. 본질은 강신주 교수가 <철학 vs 철학>이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에 관한 관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빈번하게 통용되는 개념이다. 그만큼 본질은 철학의 이상적인 개념원리로부터 시작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책에서는 피카소 연작에 등장하는 소의 모습을 통해 본질에 대한 개념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런 식으로 고전(古典), 견(見), 현재(現在), 권위(權威), 소통(疏通), 인생(人生)에 대해 각기 다른 키워드를 테마로 하여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자세를 우리에게 심어준다.


<여덟 단어>는 인생에 대한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지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인문학 교과서에 다름 아니다. 박웅현이라는 창의적인 인물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도 물론이려니와 인문학적인 통찰이 엿보이는 광범위한 교양의 파노라마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잔잔한 인문학의 향취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표지를 보면 저자 자체를 여덟 단어에 함축적으로 담아낸 상징체로 묘사하고 있다. 여덟 단어에 응축된 저자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창의적 발현체다. 이를테면 그에게 권위(權威)는 무조건적인 굴복의 대상이 아니라 불합리한 권위에는 항거할 수 있는 파편적인 힘의 분산이라고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담아놓은 여덟 가지 사유의 주제는 각기 다른 색깔이지만 인문학적인 식견을 함양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강연의 마디로 분절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여덟 단어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주제로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 교양의 보고이자 사유의 토양에 응축된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한층 고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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