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베케트 / 민음사
사무엘 베케트의 노벨상 수상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이 ‘부조리 연극’으로 칭하면서 연극 분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선구적인 작품이다. 몇 편의 희곡을 접해보긴 했지만 온전히 한 편을 읽기는 처음인 것 같다. <연극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이 희곡은 내용의 파격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리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내용 자체가 어떤 줄거리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흔히 볼 수 있는 연극의 대본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원조 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작품이니 만큼 연극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독자라면 연극이란 워낙 이런 것인가 하고 오해할 소지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것은 연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봐야 될 고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노벨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이 작품의 위치를 가늠한다는 것은 부족한 측면이 있다. 워낙 희곡을 접해본 적이 손꼽을 정도인지라 막상 작품 전체를 읽어보고 나서도 딱히 마음에 와닿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연극의 한 분야를 개척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이유에 기대어 읽었다고 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을 보면 ‘고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 궁금해진다. 고도라 하면 옛 도읍이나 외떨어진 섬이 연상되지만 사실 ‘고도’는 영어인 ‘goddot’를 한글로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작가가 창조해 낸 조어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개략적으로 해석한다면 ‘god’라는 단어를 통해 ‘신(神)’이라고 유추할 수 있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 이런 고도에 대한 궁금증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봐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이 작품의 핵심 내용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고도의 존재를 유추한다는 것도 무리수이긴 하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작가가 고도의 존재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사실만 보더라도 고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힘들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고작 몇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줄거리를 기초로 하는 극이 아닌 만큼 소수의 등장인물을 통해서도 주제를 전달하기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내용을 보면 극 중 인물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단조로운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포조와 럭키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럭키의 다소 장황하고 황당하기만 대사가 폭소를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을 제외하곤 별 의미 없는 대사가 극의 후반부까지 이어진다. 단순하게 대사만 가지고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작품자체가 줄거리에 기초한 내용 전개를 통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내용보다는 전반적인 극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 좋다. 등장인물들이 왜 지루하고 반복적인 대화와 행동을 하는지, 무대 소품이라고는 나무 한 그루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한 배경이 주는 의미는 또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개략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가 주는 주제의식을 통찰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극의 내용처럼 언제 올지 모르는 대상을 무한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마치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발견, 수정하고 재편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고도’라는 미지의 대상은 어떤 세계일 수도 있고, 유형화된 인물일 수도 있고 어떤 관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끝내 그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등장인물들을 통해 여전히 ‘기다림’은 유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을 전해줄 뿐이다.
다소 이해하기 쉽지 않은 한 편의 희곡을 읽고 느낀 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희곡이라는 장르가 독서의 한 분야로서도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대화체가 대부분인 희곡은 소설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소설이 작가의 묘사나 서술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면 희곡은 대화를 통해 무대에서 올려질 배우들의 열연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또한 소설처럼 장황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기 때문에 극의 흐름이 빠르다는 점에서 보면 소설보다는 덜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강점일 수도 있다.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는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패턴이 그런 강점을 상쇄할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다소 생경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낯선 느낌이 든다는 사실에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연극의 극본인 희곡을 통해서도 인간의 사상과 철학, 다양한 주제 의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희곡이 연극의 대본으로서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읽을거리가 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새로운 문학 장르를 접하게 된 느낌은 신선하다. 앞으로도 희곡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