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by 정작가

내 고향은 괴산에 있는 두메산골 같은 마을이다. 지금이야 외지인들이 와서 별장처럼 집을 지어놓고 드문드문 살고 있지만 이전에는 초가집도 여러 채 있었고, 가구가 제법 많은 동리였다. 마을 위쪽에 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인근에서 가장 큰 동네였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화를 겪고 난 이후, 지금은 그저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가구 수밖에 남지 않은 전원마을로 변모한 지 오래다.


이런 시골마을에 살다 보니 문명의 혜택도 늦어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인가 전기가 들어왔던 걸로 기억된다. 기억 속에 등잔불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낙후된 시골이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니 겨울이면 따뜻한 수돗물이 나올 리 만무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만 따뜻한 물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시골이었다. 겨울이 오면 손등은 거무티티한 때가 자리 잡고 앉아 날 선 겨울바람은 그 고사리 같은 손등에 칼집을 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수시로 용의 검사를 한다고 하지만 시골 아이의 추레한 몰골은 변함이 없을 수밖에. 손가락 크기만 한 코를 훌쩍이는 것은 기본이고, 양말을 며칠씩 신고 다니는 것은 일상생활이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기운 흔적은 그야말로 옵션이었다.


처음으로 대중탕을 간 것은 중학교를 막 입학하기 전 겨울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괴산읍내라고 도회지에 대중탕을 가게 되었는데, 생전 처음 구경해 보는 곳이라 낯설 수밖에. 가뜩이나 왕 때를 가지고 살아오던 시골의 거무튀튀한 아이가 물을 만나니 이 아니 신기할까? 몸을 불리는 탕에서 꾸역꾸역 때를 밀어대니 때가 동실동실 탕 안을 떠다니는 모습이라니. 같이 간 친구 녀석이 '몸 만 불리고, 때는 밖에서 닦는 겨'라고 자그마한 소리로 창피한 듯 채근하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얼른 몸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전 까지는 목욕이라고 해야 한 달에 한두 번, 부엌문을 잠가놓고, 큰 고무대야에 데운 물로 어머니가 목욕을 시켜주던 것이 전부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오늘은 '왕 때만 벗기자'며 오들오들 떨던 나를 부지런히 씻기곤 하셨다. 그 이후로도 작은 때를 벗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왕 때는 결국 시간을 벌기 위한 어머니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비록 어머니가 하늘나라에게 계시지만 그때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고요히 저며지는 듯한 느낌이다. 자식이 추울까 봐 '왕 때만 벗기자'며 달래던 어머니의 음성이 귓속에 젖어드는 건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온몸으로 느꼈던 애틋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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